[시리무]

글/엽 2014. 8. 23. 13:06

시리우스를 죽인 리무스. 폰 한글 2010으로 처음 써봤는데 좋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고 미묘... 


  정신을 차렸을 땐 너무 늦어 있었다. 늑대인간으로 변한 뒤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리무스는 왜 자신이 숲 한가운데서 피냄새를 맡고 있어야 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살아 숨쉬는 매 순간 우려했던 상황이 가까웠다는 걸 깨닫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꿈으로 나타나던 악몽이 피비린내 나는 현실이 되었다. 그것도 가장 끔찍한 형태로.

  "시리우스?"

  이름을 부르면서도 아니길 빌었다. 달빛도 들지 않은 어둠 속에서 죽은 듯이 누워있는 사람이 그가 아니길. 리무스는 평생 보름달을 싫어했지만 처음으로 그에게 간절히 소원을 올렸다. 심장이 쿵쿵 뛰고 걸어가는 다리는 자꾸만 힘이 빠졌다. 가까운 거리를 좁히는 순간에도 땅으로 꺼져버리고 싶었다. 비릿한 냄새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하게 그에게서 흘러왔다. 까만 머리와 뚜렷한 이목구비. 어느 때보다 창백한 피부는 그 밑으로 흐르던 뜨거운 피로 치장하고 있었다. 시리우스의 모습을 확인한 리무스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하얀 셔츠는 너덜너덜하게 헤어졌고 그나마 남은 셔츠도 온통 붉었다. 눈을 뗄 수 없는 상처에서 흐르는 핏물은 멈추지 않고 풀밭을 적시고 있었다. 리무스의 무릎에 불길한 붉은 꽃이 피었다.

  "치료, 치료를...."

  본능적으로 지팡이를 찾아 더듬는 리무스의 손이 덜덜 떨렸다. 몇 시간을 숲속에서 뛰어다니는 늑대인간의 허리춤에 지팡이가 있을리 없었다. 손 닿는 곳에 떨어진 시리우스의 지팡이를 찾아 쥐었지만 쓸 수 있는 주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리무스는 늑대인간일 때 사람과 떨어지도록 노력했지 늑대인간에게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방법을 연구하진 않았다. 애초에 저주받은 늑대인간에게 다친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주문은 있지도 않았다. 게다가 한눈에 보아도 흘러나온 피를 상처 안으로 주워담지 않는 이상, 상처를 치료한다 해도 별 의미는 없었다.

  시리우스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흘려나왔다. 억눌린 통증이 눈에도 보이는 듯 했다. 시리우스의 손이 허공에 멈춰있는 리무스의 손을 어렵게 붙잡았다. 굳어있던 리무스가 몸이 들릴 정도로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리우스의 손을 붙잡았다. 미안해 시리우스. 미안해. 미안해. 나 때문이야. 내가 널. 내가. 떨어지는 눈물만큼 속절없이 단어가 떨어졌다. 한마디가 끊어질 때마다 목이 아파오고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자기혐오가 휘몰아쳤다.

  "네... 잘못... 아니니까..."

  당장이라도 터져나올 울음을 참기 위해 리무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닐 거라 생각해도 엄습하는 예감은 지금을 소중히 하라고 충고했다. 우는데 시간 낭비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는 그를 보라며.

  자꾸만 흐려지는 눈 앞은 끔찍하게도 시리우스의 색이 아닌 핏빛으로 번졌다. 시리우스를 보기 위해 눈을 치뜨니 고인 눈물이 계속 흘렀다. 시리우스, 시리우스... 양 손으로 강하게 붙잡은 손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웠다.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쪽은 시리우스인데 리무스도 못지 않았다. 난도질 당한 심장을 억지로 토해내는 기분이었다. 나오지 못한 울음인 목을 조였고 숨어있는 괴물은 책임을 지지 않고 등을 돌렸다.

  사랑해. 갈 곳 없는 감정이 터져나와 소리질렀다. 사랑해, 시리우스. 제발. 떨어지려하는 시리우스의 손을, 리무스는 끝내 놓지 못했다.

  리무스는 스무 해 전의 늑대 인간을 원망했다. 물려 죽지 않은 네살 꼬마를 욕했고, 잠시나마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 수 있으리라 기대한 리무스 루핀을, 자신을 저주하며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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