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손님

마츠카와 잇세이x이와이즈미 하지메




  대학생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한정 되어 있었다. 사실 사람들이 다 그렇지만, 못된 마음만 아니라면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는 건 대학생에겐 거의 없었으니까. 이와이즈미 하지메도 그런 좁은 틀에서 빠듯하게 용돈을 벌어 쓰는 이 땅의 대학생 중 한 명이었다.

  프로 배구 선수를 목표로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온 이와이즈미는 장래를 촉망받는 축에 속했다. 하지만 장래는 현재가 아니기에 당장 필요한 자금과는 상관이 없는 게 원통할 뿐이었다. 그러니 지금 편의점 앞치마를 두르고 포스 기계 앞에 서있는 이유는 그거였다, 아르바이트.

  거창한 이유에 비해 오후 열 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지는 야간 알바는 지루했다. 다니고 있는 학교 근처의 편의점이었는데, 자취방이 많아서 가끔 늦은 시간에도 술이나 먹거리를 사가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다행히도 주사를 부리거나 뜬금없는 행패를 부리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와이즈미의 절친한 친구인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계산대에 서있으면 누구라도 나쁜 마음을 먹지 못 할 거라고 했지만, 오이카와의 말이 명백한 놀림의 의도였기 때문에 이와이즈미는 친우에게 얄짤 없이 응징을 가했다. 뭐, 진짜든 아니든 아르바이트를 하는 입장에선 편하기만 하면 그만이었지만.


  세븐 스타요.”


  아무튼 그렇게 손님이 드문 야간 시간이다 보니 몇몇 특징적인 손님은 싫어도 기억에 남았다. 예를 들면 지금 계산대에서 담배를 주문하는 손님 같은.

  규칙적인 일이라도 하는 건지, 새벽 한 시를 전후해서 꼭 담배를 주문하는 남자였다. 그것도 세븐 스타. 좀 고리타분하지 않나? 이와이즈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 세븐 스타를 고집하는 사람은 그 한 명 뿐이었다.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


  그 날,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한 건 단순한 변덕이었다. 세븐 스타를 향한 고리타분한 고집 앞에 이 변덕이 어떻게 통할지 그냥 궁금하기도 했고. 이 단골 손님 자체가 궁금하기도 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지루했던 탓으로 돌려도 괜찮겠다. 여태까지 잘만 담배를 내밀었던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뜬금없이 신분증을 요구하자 남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긴, 이 남자 손님의 액면가는 어딜 봐도 미성년자는 아니었다. 이와이즈미는 내심 자신보다 연상일 거라고 확신하고 있기도 했고.

  기분이 나빴던 걸까. 슬쩍 손님의 눈치를 살핀 이와이즈미가 농담이라는 말을 하려다 삼켜버리곤 담배 진열대로 등을 돌렸다. 세븐 스타, 세븐 스타. 하필 원래 자리에 있어야할 세븐 스타가 엉뚱한 곳에 가있어서 뒤늦은 민망함이 배로 몰려왔다.


  여기…….”

  자요.”


  뜻밖에도 다시 마주 본 손님은 웃고 있었다. 손바닥을 뒤집은 것처럼 표정이 바뀌어 있었는데, 정확히는 입 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이와이즈미가 내놓은 담배 옆에 놓인 신분증이 가지런했다. 장난이었는데. 입술을 오므린 이와이즈미가 일단 형식상으로 신분증을 집어들어 확인했다. 마츠카와 잇세이. 꽤 세련된 이름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숫자 두 자리로 시선을 옮겼는데.

  동갑이네. 이와이즈미의 눈이 절로 마츠카와의 얼굴로 올라갔다. 이 얼굴이? 동갑? 진짜로? 손님에게 무척 실례되는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수 초간 눈빛으로 퍼부은 이와이즈미가 마츠카와의 미소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지폐를 내놓는 마츠카와의 웃음이, 왠지 나는 네 생각을 다 읽었다고 말하는 것 같아 죽도록 민망했다.


  고맙습니다.”

  그럼 다음에.”


  주머니에 담배를 넣은 마츠카와가 유리문을 열고 나갔다. 편의점 문에 달아놓은 유리종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길게 여운을 남겼다.


  그 뒤에도 마츠카와는 규칙적으로 편의점에 찾아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세븐 스타를 사가거나, 가끔 맥주나 다른 먹거리를 같이 사가기도 했다. 달라진 건 대화가 생겼다는 점이었다. 이거 과자 맛있어요. 하면 마츠카와가 한 봉지를 더 사서 이와이즈미에게 준적도 있었다. 꽤나 당황스러웠지만 심심한 새벽에 괜찮은 친구가 생겼다고 여겼다.

  그러다 한참, 마츠카와를 보지 못했다. 하루나 이틀을 거르는 것은 자주 있던 일이라 그러려니 했는데 나흘, 닷새가 지나니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었다. 담배가 아직 남았나, 바쁜가, 혹시 다쳤나, 이사라도 갔나.

  그저 잠시 기억에 남을 단골손님이면 족했는데, 묘하게 뜬금없는 요구에 웃으며 신분증을 내주었던 얼굴이 편의점 천장에 맴돌아 슬슬 미칠 노릇이었다. 이게 정상인가. 진열용 냉장고에 음료수를 채워 넣고 남은 박스에 앉아 멀거니 고개를 들었다. 이건 꼭……. 문득 떠오른 연상을 떨쳐내려 이와이즈미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 아니다. 아니라고!


  보름이 가까웠다. 혼자 이 정도쯤이면 그저 그런 존재로 잊히겠지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보고 싶다. 어느새 그런 말도 삼키지 못한 사탕처럼 입 속에 맴도는 수준이었다. 처음 진지하게 올려본 그 한 마디가 아주 한정적인 시간에 짧게 만난, 그것도 동갑인 남자를 향해도 좋은가 싶었지만 이제 오지도 않은 사람이니 그러려니 할까 싶었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억울했다. 일방적으로 계산대에 매여 떠난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퇴근을 딱 오 분 남긴 시간이었다. 다음 시간 아르바이트생은 딱 십 분만 늦을 거 같으니 적당히 먼저 가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한숨을 쉬며 편의점 앞치마를 벗은 이와이즈미가 계산대의 접이식 탁자를 열어 밖으로 나왔다. 장장 여덟 시간만의 해방이었다. 오늘도 단골손님은 오지 않았다.


  쏴아아.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무슨 큰 차가 지나가나 싶어서 고개를 돌렸는데 차는커녕 밖을 분간하기 힘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소리 소문 없이 찾아온 소나기는 그만큼 존재감을 어필하듯 강하게 유리문을 두드렸다. 마치 내가 너의 마지막 손님이라는 듯이.

  마츠카와의 존재도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올 기색도 없이 뜬금없이 문을 열고 찾아와 항상 같은 향을 품고와 같은 담배를 주문해 가져갔다. 같은 얼굴과, 같은 미소와, 같은 목소리와. 꼭 소나기처럼. 그래, 지금처럼. 영화 같이 생각해보자면 지금처럼, 소나기를 뚫고, ?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앞에 선 사람을 확인한 이와이즈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나기에 흠뻑 젖은 마츠카와가 그 곳에 서있었다.


  일회용 우산 좀 살 수 있을까. , 세븐 스타도.”

  , , , 아니, 그래.”


  안으로 들어온 마츠카와가 카드를 건네 준 뒤 머리를 살짝 터는 동안 이와이즈미는 금방 포스기에 계산을 찍었다. 그거 갖고 가면 돼. 계산대를 열지도 않고 꺼내 온 세븐 스타를 마츠카와에게 건네준 이와이즈미가 문 근처에 있는 일회용 우산들을 가리켰다. 소나기가 그치길 기다릴까, 자신도 우산을 사야할까 짧은 고민을 해야 하는데 와중에 너무 오랜만에 본 마츠카와에게 말도 걸고 싶었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쏟아지는 소나기에 아무런 대책 없는 보행자처럼 이와이즈미는,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같이 쓰고 가자.”


  그런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넨 건 마츠카와였다. 아직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몸이었지만, 보름 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그 미소가 꼭 신분증을 처음 보여줬을 때와 똑같았다.

  그날 이와이즈미는 나란히 우산을 쓰고 가는 동안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들키지 않으려 갖은 애를 썼다. 보름이나 보이지 않은 이유를 묻는 건 헤어지기 전에 나눈 연락처로 묻기로 했다. 어쩐지 기쁜 소나기 손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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