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이와] 영웅

글/엽 2016. 3. 24. 03:10


영웅

마츠카와 잇세이 X 이와이즈미 하지메

트위터 해시태그 보고 짧게 엽편



#최애커플_왼쪽에게_총이_있고_5분_내로_오른쪽을_죽여야_지구의_멸망을_막을_수_있다


  “그렇대.”


  설명을 들은 마츠카와가 들고 있는 권총을 들여다보았다. 수십 번을 무감각하게 쏘았던 총알들은 모두 같은 소재로써 같은 죽음을 몰고 왔을 텐데, 마지막 한 발이 특별해지는 이유는 뭘까. 쏜 만큼의 무게로 가벼워져야하는 총신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영영 어깨를 올리지 못해도 좋을 정도로.


  “나 영웅이랑은 안 어울리는데.”

  “그건 그렇지.”


  마츠카와의 말에 이와이즈미가 실없이 웃었다. 역시 하려면 내 쪽이지. 이번에 웃은 쪽은 마츠카와였다. 전에 없이 크게 폭소하는 마츠카와에게 이와이즈미는 굳이 핀잔을 주지 않았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선 언제나 감정이 과잉되기 마련이었다. 첫 살인을 할 때도 그랬으니 마지막 살인이라고 또 다를까. 한 손으로 눈가를 가리고 시원하게 웃던 마츠카와의 상체가 앞으로 굽었다. 밀어내고 싶은 만큼의 웃음을 다 썼는지 부자연스럽게 소리가 뚝, 끊겼고 마츠카와는 얼굴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폭소 후의 정적은 고요보다 더한 무음이었다.


  “못해.”

  “너 웃느라 1분 30초쯤 지난 거 같다.”


   마츠카와의 반응을 알고 있었다는 듯 이와이즈미의 대답은 준비된 대본처럼 자연스러웠다. 이와이즈미의 표정은 필요 이상으로 편안해서, 누가 봤다면 3분 30초 안에 죽어야하는 사람이라곤 짐작하지 못했을 터였다. 아니, 사실은 그런 거짓된 표정으로라도 마츠카와의 눈을 가려주고 싶었을 지도 몰랐다. 세상 어느 누구가 자신의 죽음을 강제 당하는데 평온할까. 마츠카와는 잔인한 세상의 이기심에 이를 악물었다.


  “나도 사람 참 많이 죽였다. 나쁜 놈들 물리치겠다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마츠카와를 바라보며 이와이즈미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넷이서 시작한 일이었다. 초등학생 때 꿈꿨던 영웅이 정말 된 것 같아서 철없이 신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세상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았지만 이 땅위의 불의를 저의 손으로 종식할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의 든든함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이것도 그 일의 연장선일 뿐이었다. 그래, 그뿐이다.


  “딱 한번만 마지막으로 부탁할게.”

  “못한다고.”

  “잇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정히 이름을 부르는 잔혹한 전략에 마츠카와가 끝내 눈물을 보였다. 평생 영악함이란 걸 모르던 이와이즈미가 왜 지금만큼은 악마처럼 사악해 보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차라리 죽이고 싶을 만큼 사악하면 여태까지처럼 죄의식이라도 덜했을 텐데. 세상과 너를 저울질 하면 너에게 추가 기울 정도로 소중하고 당당하고 사랑스러운 너라서 총구를 들 수가 없었다.

  가리고 있던 얼굴을 보인 마츠카와의 눈가가 젖어있어, 이와이즈미가 옅게 미소 지었다. 마츠카와는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 수 있었다. 너는 그렇게 해줄 거였다.


  “오이카와랑 하나마키한텐 미안하다고 전해줘.”


  주체 없이 눈물이 흘러서 이젠 이와이즈미가 어떤 표정으로 마지막에 임하는지 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핑계로 너를 맞추지 못하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그런 허튼 생각도 했지만 딱 한 발 남은 총알이 빗겨갈 일이 없다는 걸 마츠카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예상을 하고 있었다. 영원 같은 5분, 그 후에 혼자 남게 될 마츠카와 잇세이라는 남자의 미래를.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열 살 아이처럼 거침없고 스무 살 청년처럼 용감했으며 서른 살 영웅처럼 도리를 아는 이와이즈미 하지메를, 언제나 사랑했다. 여기서 네 의지를 반한다면 그 사랑하는 너의 전부를 부정하는 거였다.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자신을 향하는 총구를 보다가 그 너머에 있는 마츠카와에게 시선을 두었다. 세상의 부당함을 탓하기엔 5분이란 시간이 너무 짧았다. 사랑했던 세상과 보고 싶은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 5분이 아니라 5년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할 선택은 같았을 테니 달라지지 않을 결정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너에게도 여지없는 강요를 쥐어준 건 미안하지만.


  “사랑해.”

  “나도 사랑해, 하지메.”


  자신이 마츠카와를 사랑하는 마음조차 일방적인 강요였다. 그 강요도 받아준 너이기에 마지막 한 번만 더 감당해주길 기댈 수밖에 없었다. 눈을 감으니 고통스러운 네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힘들 때 언제든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 다가갈 수 없는 거리를 두고 미어지도록 싫은 결말을 매듭지어야 할까. 역시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 더 해줄걸 그랬어. 영웅이고 싶었던 남자의 마지막 후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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