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恋歌

 

及川 徹 月島 蛍

오이카와 토오루 츠키시마 케이

 

 



2

 


  여름에서 가을로 시간이 관통하는 즈음엔 누구나 묵은 더위를 해소하고 싶다. 술과 여자놀음을 제외하면 별 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마을에서 그 시기에 손꼽을 수 있는 행사는 불꽃 놀이였다. 슬슬 찬바람이 불어오고 가을비가 내리기 전의 보름달이 뜨는 밤. 수도를 관통하여 흐르는 큰 강가에서 열리는 불꽃놀이는 수도의 손꼽히는 행사 중 하나였다. 많은 사람들이 오전에 서둘러 할 일을 끝내고 오후부터 저마다 먹거리를 갖고 강변에 모여들었다. 타국에서조차 명성을 듣고 돈 많은 치들은 이 날을 위해 카라스노를 방문할 정도였다. 

  물에 가장 가까운 자리가 좋았지만 뒤로 밀려났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그만큼 불꽃은 화려하게 하늘을 뒤덮었으니까.


  “딴 길로 새고 있잖아, 야마구치.”

  “미안 츳키!”


  츠키시마와 야마구치의 갈 길도 다른 사람들과 같았다. 어차피 츠키시마는 외부에 나간 일이 적고, 그의 얼굴만 보고 츠키시마의 성을 연상할 사람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신분이 노출될 걱정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용케 공께서 허락해주셨네?”

  “아아, 뭐.”


  그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야마구치는 특별히 츠키시마 가문과는 관련이 없는, 그저 가까운 곳에 살던 또래 소년이었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어렸을 때부터 얼결에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집안의 극비사항을 알게 된 야마구치를 그냥 내버려 둔 건 츠키시마 공의 결정이었지만, 그래도 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권력을 가진 귀족의 당주가 무서운 건 야마구치로선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껄끄럽긴 한가.’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도 친아들이 마음 놓지 못하는 상대인데 타인은 어쩌려 싶었다. 야마구치에게 츠키시마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까지 해두며 입단속을 시킬때, 야마구치는 영리하게도 한 번에 그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츠키시마를 난처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다. 야마구치는 분명, 츠키시마에게 둘도 없이 좋은 친구였다.

  해는 이제야 뉘엿뉘엿 넘어갈 채비를 하는데 불꽃놀이 장소에는 벌써 일일장이 열려있었다. 개인이 즐길 수 있는 작은 불꽃놀이 세트에서부터 우스꽝스럽거나 섬뜩하게 생긴 가면, 가볍게 머리에 두를 수 있는 머리띠나 먹거리들이 사방에 넘쳐났다. 이르게 걸어둔 등불처럼 가벼운 흥분으로 인파가 넘실거렸다. 반면 츠키시마의 눈은 절로 찌푸려졌다. 밖에 자주 나오지 않는다고 북적이는 사람들이 특별히 반가운 건 아니었다. 오늘 보고 싶었던 건 좀 특별한 광경이었지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이건 어떨까?”


  시장통에 얌전히 견디고 있는 이유는 오직 야마구치 때문이었다. 야마구치의 할머니가 꽤 편찮으셨고 요즘 젊은 시절에 선물로 받았던 비녀 얘기를 하신다고 들었다. 그리고 지금 야마구치가 옥색의 비녀를 가리키는 걸 보고 츠키시마가 고개를 아니꼽게 기울였다. 진짜 옥이 아니라 색만 비취빛인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츠키시마가 선뜻 대답하지 않고 조금 더 주변을 살피다가 야마구치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이쪽.”


  어어어? 야마구치가 얼떨결에 츠키시마를 따라 간 곳은 조금 더 떨어진 곳에 펴진 좌판이었다. 어느 노인이 앉아있는 곳은 좁은 돗자리만 펴져있었지만 그 위에 올라온 비녀들은 양갓집 규수들마냥 두꺼운 천 위에 올라 있었다.


  “이거로 하자.”

  “엑? 이거?”

  “그리고 선물이야.”


  틀림없는 백옥이었다. 젊은 아낙들이 좋아하는 화려한 장신구는 없었지만 소소하게 짝지어진 나비 한 쌍은 금색이었다. 스스럼없이 비녀를 골라낸 츠키시마를 좌판대의 노인이 힐긋 올려다보았다. 야마구치의 할머니를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얘기라면 몇 번 들어 알고 있었다. 야마구치가 할머니를 얼마나 생각하는지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어서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자신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 양 살아간다 해도, 이 정도는.


  “고마워, 츳키.”


  비녀를 제 것인양 소중하게 갈무리한 야마구치의 뺨이 조금 붉었다. 두어 번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츠키시마는 말 대신에 계산을 끝내는 걸로 논쟁을 마무리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가자.”


  불꽃 놀이만을 기대하는 인파에 지는 해가 심술을 부리는 건지 유독 일몰이 짧게 느껴졌다.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져 낮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사람들은 점점 더 강가에 모여 들었다. 물에 가까운 강변에는 꽤 신분이 높은 귀족 자제들이 놀이판을 차지하고 있었다. 더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난장판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쪽을 일부러 쳐다보지 않았다.

  야마구치와 츠키시마가 자리를 잡은 곳도 강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소위 명당이라고 불리는 자리는 하인을 데리고 있는 귀족들의 몫이었다. 일반 서민들이 아주 일찍부터 자리를 지킨다 하더라도 귀족들의 등쌀에 몇 분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츠키시마도 원한다면 어쩌면 그런 권력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호타루라면 몰라도 케이에겐 힘든 일이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케이는커녕 호타루로도 더 이상 속이며 나설 수 없었으니. 물론 할 수 있다 해도 그런 일은 한심해 보였지만.

  가을과 보름달, 불꽃놀이. 사실 츠키시마의 여식이 등장하기엔 좋은 무대였다. 츠키시마의 고모도 이 년마다 열리는 이 행사에 꼬박꼬박 나왔다고 하고, 올해도 어린 츠키시마가 나온다는 소문이 진작부터 돈 모양이었다.


  ‘나오긴 나왔지만.’


  사람들이 앞뒤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미 걷는 게 아니라 떠밀린다는게 맞는 표현일지도 몰랐다. 츠키시마는 키가 큰 편이라 답답하진 않았지만 생판 모르는 남들에게 둘러싸이는 기분은 싫었다. 소지품 잃어버리기에 딱 좋은 상황이라 야마구치에게 한마디 건네려던 차였다.


  “야마구치, 조심……?”


  허둥거리다 떠밀리기 쉬운 야마구치에게 당부하려는 순간 이미 야마구치는 온데간데 없었다. 사방은 모르는 사람들뿐이었고 와중에도 자꾸만 몸은 밀리고 있었다. 야마구치나 자신이나 제 앞가림은 할 수 있겠지만 어디서부터 잃어버린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아 영 찝찝하고 슬쩍 짜증이 났다. 찾으려 해도 이만한 인파를 뚫고 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야마구치가 알아채고 주변에 있었다면 진작 자신을 부르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관두었다. 나중에 집 앞에서라도 볼 수 있겠지. 

  겨우 뒤만 돌아봤다가 다시 앞으로 밀린다. 여기저기서 짜증 섞인 탄식이 흘렀고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놓칠세라 아예 품으로 안아 올렸다. 좀 더 바깥쪽에 있을 걸 그랬나, 불편하게 서있던 츠키시마가 퍼뜩 잡념을 없앤 건 꽉 밟힌 발 때문이었다.


  “아!”

  “이크! 미안미안. 실수.”


  누군가 츠키시마의 발을 세게 밟았다. 여름용 신발이라 발가락이 다 드러나 있기도 했고, 잔뜩 신경을 곤두세웠던 터라 저도 모르게 아픈 소리를 내버리자 옆에 서있던 사람이 금방 사과를 해왔다. 자신의 잘못으로 사과를 하면서도 실수라 덧붙이며 어쩐지 여유만만인 말투라 츠키시마가 불만스레 옆 사람을 순간 쳐다봤는데, 그 눈빛을 읽은 모양인지 남자가 아하하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미안하게 됐어. 이런 인파라 어쩔 수 없……. 오오?”


  남자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사방을 옥죄던 인파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멀리에서 누군가 정리를 시도한 게 이제서 먹힌 모양이었다. 츠키시마와 남자의 사이에 반발자국 정도의 여유가 생겨서, 그제야 남자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츠키시마보다는 조금 작은 키였지만 아주 작은 편은 아니었다. 꽤 개성적으로 손질한 갈색 머리에 딱 그만큼의 갈색 눈이었다. 연한 비취의 비단 옷이 방금까지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었다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럽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츠키시마는 문득 야마구치에게 선물해준 비녀를 떠올렸다.


  “휴. 여긴 원래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


  움츠렸던 팔을 한숨과 함께 팔을 위로 쭉 뻗으며 남자가 말했다. 말을 거는 건가? 고민스러운 와중에 남자가 이쪽을 보고 웃었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시선에 당황해 수 초간 눈만 깜빡이며 마주보게 된 셈이었다. 아, 대답.


  “아, 네, 뭐. 그런 행사니까요.”


  앞으로 가도 머리 위에 달린 하늘에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 깨달은 것처럼, 사람들은 더 이상 자리를 다투지 않았다. 시간이 될 때까지 서로의 일행과 잡담을 나누는 소음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그 소음에 야마구치도 아닌 처음 만난 남자와 자연스럽게 속해있다는 게 묘했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보려고 했는데 일행이 날 잃어버린 것 같거든. 꼼짝 혼자 기다려야겠어.”

  “그쪽이 잃어버린 게 아니라요?”

  “에이, 그건 아니지. 쿠니미 쨩이 키가 작아서 휩쓸려 간 거 아닐까~.”


  쿠니미 쨩? 작으면 얼마나 작길래? 츠키시마가 알고 있다는 듯 멋대로 설명하는 통에 사고 회로가 따라가는 게 느렸다. 애초에 전혀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도 오랜만이고, 어딜 어떻게 대답해야하는지도 한참 고르고 골라야 했다. 그게 타인이기 때문인지,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 만난 이 사람이기 때문인진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모르는 사람의 모르는 화제에 답할 구석이 없으니 불쑥 오기가 생겼다.


  “야마구치도 사라졌으니 그 사람이 누군진 몰라도 그럴 수 있겠네요.”

  “야마구치? 그거 그쪽 친구인가봐?”

  “네.”


  넉살도 좋고 여유롭다. 이쪽은 사람을 대하는 일이 드물어 매끄럽게 대화를 하는데도 애를 먹는데 남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 대해 묻는 것도 스스럼이 없었다. 밖을 많이 돌아다니는 사람은 이런 느낌인가. 특별히 갇혀 산 건 아니었지만 남자가 꽤나 자유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귀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오늘 잠깐 스친 거로 만나고 말 사람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생각이 가지를 치고 뻗어나가느라, 츠키시마는 남자의 연갈색 눈동자가 가볍게 휘어진 것도 몰랐다. 


  “엇, 시작한다."


  휘유. 하늘로 쏘아올려지는 소리에 웅성대던 사람들이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팍, 하고 불꽃이 터지는 순간 츠키시마는 자신이 들은 소리가 불꽃이 올라가는 소리가 아닌, 남자가 휘파람을 분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남자는 어느새 자신의 커다란 소매 안에 손을 끼워놓고 즐거운 얼굴로 하늘을 보고 있었다.

  츠키시마는 불꽃놀이의 원리 따윈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주재료가 화약이라는 것 정도.  언젠가 형이 화약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최근 전쟁에서 주로 사용되는 무기의 원리도 그것이라고 하던데,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이만큼 사람들을 가을밤 꿈으로 꾀어낼 수 있다는게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것도 쓰기 나름일지.


  "아, 심각한 얼굴. 안경 군은 되게 인생 힘들게 살 것 같네~."

  "뭐요?"


  새삼 맥 없어 보이는 화약 쪼가리들를 낭만 없이 보고 있으려니 귀신같이 남자의 목소리가 상념을 깨웠다. 의도치 않게 속마음을 들킨 츠키시마가 퍼뜩 가시를 세웠다.


  "그러는 그 쪽은 하나하나 제대로 하는 거 없이 사실 것 같거든요. 인생도 편히 사신 것 같고."

  "호오? 보기보다 투지가 괜찮은데~."

  "싸우자는 거죠 지금?"

  "설마?"


  츠키시마가 샐쭉하니 가늘게 뜬 눈으로 봐도 남자는 즐겁다는 듯 킥킥 웃을 뿐이었다. 싸울 생각이냐고 물었지만 진심이었을지는 만무했다. 여러모로 적응이 안 돼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예의 없이 구는 것도 오랜만이었지만, 막상 보니 시시하다 생각해도 힐끗힐끗 시선을 잡아끄는 불꽃놀이 때문인지 마음마저 험하게 굴진 않았다.


  "그렇게 금방이라도 돌아가고 싶다는 표정 말고, 조금만 있어봐. 나 이거 지난 번에도 봤거든."


  절정이 있긴 있더라. 조금 전 킥킥대던 것과는 달리 남자의 웃음이 또 은근하게 바뀌었다. 제가 보물을 숨겨두기라도 한 것마냥 은근한 웃음이었다.

  몇 년동안 저축해둔 화약을 다 퍼붓기라도 할 셈인지 투두둑, 불꽃이 터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떻게 들으면 폭죽 터지는 소리가 강렬하게 하강하는 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꽤나 우울했다. 아무리 화려해도 결국은 타서 떨어질 것들이 아니었나. 잠깐 반짝하고 말 순간도 절정인데, 또 다른 '절정'을 위해 절정조차 절정이 아니게 되는데.

  그래도 시선은 얌전히 하늘에 붙박혔다. 있잖아, 케이. 어디선가 어릴 적에 들었던 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케이는 분명, 나중에 더 좋아질 거야. 형의 위로 아닌 위로는 고작 열한 살 먹은 츠키시마의 귀에도 참 어설펐지만 막연하게 형이 전하고자 하는 감정만은 알 수 있어서, 평상 위에 앉은 채로 어린 츠키시마는 의문을 삼킨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중에 언제?

  그 때 묻지 못했던 질문들이 하늘에서 흩어졌다. 아, 이런 맛으로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건가. 묘한 쾌감을 느끼며 츠키시마가 뒤늦게 가을 밤 행사의 묘미를 느낄 때 쯤, 하나 둘 올라오던 폭죽이 조금씩 사그라들다가 아예 멈추었다. 끝인가? 궁금해진 츠키시마는 자신도 모르게 옆의 남자를 쳐다보았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밤하늘 색 너른 캔버스를 의기야양하게 보던 남자가 이쪽을 보는 바람에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두 사람의 머리 위로 한꺼번에 폭죽 꼬리가 피어올랐다.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 동시에 온 하늘을 덮어버릴 기세로 밤꽃이 피었다. 1초나 떠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만큼이나 강렬했다. 우와! 사람의 놀라운 환호가 터져나왔고 그에 부응하듯 두어번 꽃이 혼신을 다 해서 피었다.

  내가 말했지?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처음 본 지 한 시간도 안 된 인연이었는데도 확신할 수 있는 웃음이 산화하는 밤하늘을 머리 위에 두고 반짝였다.



+  +  +

  "혼자서 사라지지 말아주세요. 늦어서 이와이즈미 씨한테 혼나는 건 결국 저니까요."

  "사고였는걸~. 그리고 나도 혼나긴 혼나."

  "일부러 그러셨잖아요. 전 혼나기 싫어요."


  쿠니미의 피눈물 없는 핀잔에도 오이카와는 지지 않고 입을 삐죽거렸다. 쿠니미는 츠키시마가 생각한 것처럼 인파에 휩쓸릴만큼 키가 작지 않았고, 무엇보다 가벼운 무장을 하고 있었다. 눈에 잘 띄지 않게 겉도포 안에 감춰두긴 했지만 검집의 끝이 옷자락 끝에 살짝 보이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멋대로 사라진 건 쿠니미에게 멋대로 심부름을 시킨 후였다. 입이 심심하니 가볍게 먹을 수 있는게 있으면 좋겠다고 억지로 쿠니미를 떠민 뒤 일부러 잘 찾지 못하도록 인파 속으로 떠밀려 들어간 거였다. 어차피 비상시 합류 장소 정도는 근처에 있었으니 문제는 없었다.

  오이카와가 지난 행사를 봤다고 한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오늘의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근처에 지나가다보니 생각이 났고, 수행원인 쿠니미를 부러 설득하기도 했다. 물론 쿠니미는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그 혼자서는 오이카와의 고집을 이길 수 없었다.


  "국경까진 거리가 있으니 아무튼 좀 서두르겠습니다."


  실랑이를 해봤자 시간만 지체될 뿐이었다. 사실 쿠니미도 꽤나 초조했다. 오이카와와 쿠니미가 한가하게 카라스노에서 불꽃놀이 행사를 볼 입장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이카와가 이 곳에 있다는 걸 들키기만 해도 어떤 혼란이 펼쳐질 지 가늠도 안 될 정도였다. 그리고 오이카와가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며칠동안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을 뿐이지.

  한적한 곳에 매어두었던 말의 고삐를 쿠니미가 푸는 동안 오이카와가 훌쩍 말의 등으로 올라탔다. 며칠동안의 여흥 아닌 여흥도 이제 끝이난다고 하니, 방금 잠깐 얼굴을 보았던 츠키시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닌 척 해도 세상물정이라곤 몰라보였고, 더군다나 쉽게 구할 수 없는 서양식 안경을 끼고 있다는 게 인상적인 소년이었다.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나?"

  "예?"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미덥지 못한 쿠니미의 시선을 오이카와가 모른 체 하고 말의 고삐를 쥐었다. 그럼 갈까. 두 사람은 점점 더 한적하고 험한 길로 말을 몰았고, 그대로 비취를 삼킨 밤이 깊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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