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모양은 그 사람의 성격을 담는 경우가 많다. 머글 연구 수업 교과서에서 읽은 이 문장에 나, 호그와트 6학년 시리우스 블랙은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었다. 우선 제임스의 글씨체는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날아갈 것 같은 것이 딱 여기저기 팔랑거리며 돌아다니는 그의 성격과 똑 닮아 있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직접 녀석의 책을 뺏어들고 확인했으니 확실하다. 내 경우는, 글쎄,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하지만 제임스 녀석이 고귀하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반 이상이 놀리는 의도였다는 가능성에 대충 해놓고 치워놓은 변신술 숙제를 걸 수 있다. 대충 했지만 필요한 내용은 다 들어가 있겠지.
그리고 리무스. 호그와트의 둘째가라면 서러운 모범생이자 내 연인인 그도 머글들의 오묘한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리무스는 지금 기숙사 침대에 앉아 서랍 위의 빈 공간에 양피지를 놓고 변신술 숙제를 하고 있었다. 신중하게 써내려가는 리무스를 슬며시 건너보았다. 내가 저를 쳐다보는 줄도 모르고 리무스는 양피지에 한 단어씩 열심히 적고 있었다. 눈치 챘다면 숙제를 훔쳐본다고 잔소리가 날아왔을 텐데.
리무스의 글씨는 그야말로 단정함 그 자체였다. 더 나아가 글을 적는(정확히는 숙제를 하는) 리무스의 태도도 그랬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잉크를 묻힌 깃펜으로 필기를 하고, 문장을 고치거나 철자를 틀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리무스는 그런 일이 거의 없었다. 마법으로 수정한 것도 아니고 그냥 원래 쓰는 손이 빠르면서도 침착한 모양이었다. 깃펜을 쥔 그의 손은 그만큼이나 똑 부러지고 학업에 있어서 오차를 용납하지 않았다. 뼈가 도드라지는 하얀 손에서 흘러나온 까만 글씨는 정갈하게 이어진다. 그렇다고 꼭 기계 같지는 않다. 알파벳에 날카롭게 끊어지는 철자는 거의 없지만, 필기체를 쓰지 않는 양피지 위의 리무스의 글씨는 특히나 전체적으로 둥근 느낌이었다. 날카롭게 모나지 않은 리무스의 흔적들이 모인 미완성의 숙제는 솔직히 내 눈엔 귀엽게만 느껴졌다.
‘애니마구스’를 적던 리무스의 손이 멈추고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막힌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애니마구스 항목에서 막히다니. 리무스는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애니마구스 세 명과 함께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데 애니마구스에 대한 설명을 양피지 두 장 분량으로 적어내는 숙제에서 막히는 일이 있을 수 있……지 않군. 그는 숙제가 막힌 것이 아니라, 나를 쳐다보느라 잠시 다음을 적는 것을 미뤘을 뿐이었다. 베끼는 거 아니야, 나 숙제 다 했어 리무스. 양 손을 들어 올리고 대꾸하자 리무스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내 주변을 살폈다. 거참 속고만 살았나.
“그럼 뭘 그렇게 보고 있었어?”
“네 글씨.”
“내 글씨?”
“응. 양피지에만 애정을 듬뿍 주는 것 같아서.”
숙제하는 네 모습도 예쁘지만, 심심해. 투정처럼 덧붙이니 리무스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가 이내 내리며 푸스스 웃었다. 나는 리무스의 저 웃음이 정말 좋았다.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다가도 금세 풀어주는 웃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하다가 바닥에 떨어진 갈레온을 발견한 기분. 물론 리무스의 미소는 내게 갈레온 따위보다 훨씬 값진 것이지만.
“양피지 말고 나한테도 관심 좀 줘.”
물론 깃펜 말고 다른 걸로. 덧붙이며 자리를 슬쩍 리무스의 옆으로 옮겼다. 마저 숙제를 해야 한다며 징그러운 소리 말라고 밀어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데, 리무스는 그의 허리에 슬며시 팔을 감아도 웃기만 했다. 그럼 뭘로 써줘? 내가 갖고 있는 건 깃펜뿐인걸. 말하는 리무스의 입 꼬리에 걸린 미소는 제법 능청스러웠다. 근 몇 년동안 리무스는 놀랄 만큼의 여유를 나와 제임스에게서 배운듯했다. 특히 스킨십을 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리무스는 내 입술이 그의 입술 위를 덮을 때까지도 미소를 거두지 않았고, 가벼운 입맞춤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의 웃음에 가슴이 간질간질해졌다. 리무스의 손이 간질거리는 심장, 꼭 그 부근으로 올라와 손가락으로 장난스럽게 꾹꾹 눌렀다.
셔츠 위로 손가락이 매끄럽게 움직였다. 얇은 셔츠 한 장을 두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맨살 아래로 녹아 들 것 같은 손놀림의 은근함은 경탄스러울 정도였다. 장난을 치는 것 같았는데 가만히 지켜보니 리무스의 손가락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다음은 직선. 그 다음은 직선과 곡선이 함께였다. 리무스의 손가락이 무엇을 쓰는지 알아챈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Sirius. 내 이름이었다.
“I LOVE U 같은 건 안 써?”
리무스가 웃음을 터트리곤 팔을 들어 내 목을 껴안았다. 나 역시 거의 동시에 리무스의 몸을 품에 안아주고 마주 웃었다. 등을 쓸어주던 리무스의 손가락이 다시 살살 움직였다. 아까보단 조금 더 수줍어하는, 작고 짧은 움직임이었지만 사랑스러운 메시지를 전해줄 거라는 확신에 모든 오감을 등에 집중했다. 길지 않은 곡선 두개가 대칭을 이루는 모양이 리무스의 손끝을 통해 내 등으로, 등에서 마음으로 전해졌다.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자 부끄러웠던 모양인지 더 말하지 말라며 미리 경고를 한다. 오, 누구 명령인데 따르지 않겠는가. 자꾸만 입술을 간지럽히며 터져 나오는 웃음까진 참지 못했지만.
그의 글씨는 무엇을 받치고 있어도 사랑스럽다. 잉크로 형태가 남지 않아도 리무스는 온전히 나에게 그의 흔적을 남겨주고 있었다. 이를테면 눈길이라던가, 손장난이라던가 하는 형태로. 눈에 보이진 않지만 잉크 자국보다 명확하게 리무스는 나에게 보여주고 자신을 보여준다. 그것은 숙제나 책에 쓰여진 딱딱한 필기보다도 훨씬 따뜻하고 다정하고, 직접적으로 리무스 루핀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같은 것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씨가, 그의 흔적이, 그의 모든 것이 좋다. 연인의 사랑스러운 일부분이니까, 당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