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이와] 첫사랑

글/엽 2016. 3. 26. 23:56


첫사랑

마츠카와 잇세이 x 이와이즈미 하지메

160326 이와른 전력





  그러니까, 마츠카와가 그 남자를 어떻게 알았느냐부터 거슬러 올라가보자.

  엄마 친구의 아들. 줄여 말하면 엄친아였지만 그 남자와 저를 구분하기에 썩 어울리는 표현은 아녔다. 8살 차이는 아이와 어른의 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마츠카와는 아홉 살 때 열일곱 살 고등학생의 이와이즈미를 처음 만났다. 부모의 나이는 비슷한데 첫 자식의 나이 차이가 왜 많이 나는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 다만 외동이었던 마츠카와는 그저 잃어버린 형을 만난 것 같아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마냥 설렐 뿐이었다.

  아홉 살 마츠카와의 눈에 고등학생 이와이즈미는 충분히 어른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운동까지 하는 이와이즈미는 저보다 훨씬 덩치가 컸고 튼튼했다. 거기에 아홉 살 초등학생을 친동생처럼 챙겨주니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바빠 마츠카와가 밤까지 혼자 있어야 하는 날이면, 이와이즈미는 부활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도 마츠카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생 용돈으로 간식거리나 선물을 사다주던 이와이즈미가 마냥 좋았던 마츠카와는, 점점 머리가 굵어질수록 이와이즈미가 보여주었던 행동이 고등학생으로서 꽤 많은 걸 포기한 배려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그걸 알 즈음엔 이미 두 사람은 각자의 일상에 시간을 빼앗겨 점차 사이가 소원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 했던, 중학교 입학식을 꼭 축하해주겠다던 약속을 이와이즈미는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게 지켰다. 꽃다발과 함께 건네주던 축하 한 아름이 그렇게 잊히지 않았다. 축하한다, 인마. 참 투박하고 형다운 인사라고 여겼다. 성인이 되어 대학생활을 하고 있는 이와이즈미는 그 좋아하던 배구를 그만 두었다고 했지만 마츠카와에 눈엔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와이즈미는 마츠카와의 머리를 손쉽게 쓰다듬어 줄 수 있을 정도로 크기만 했다.

  이와이즈미가 중고등학교 선생님을 목표로 대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부모님을 통해 들었다. 정확한 과는 몰랐지만 운동선수를 했던 경험을 살려 분명 체육계일 거라고 지레 짐작할 뿐이었다. 직접 물어볼까. 이와이즈미의 연락처는 알고 있었지만 남자 둘, 그것도 엄마 친구의 아들들이라는 관계는 미주알고주알 메시지를 주고받기엔 애매한 거리였다. 고등학생 때 자기 입으로도 공부는 성미에 안 맞는다고 했으니 아마 대학교는 더 힘들겠지. 그런 생각이 들면 쉽게 안부를 물을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물어 보는 데에 그치는 관계임을 확인하는 게 싫었을 지도 몰랐다. 유년 시절을 차지했던 옆집 형 때문에 가슴 떨리는 밤이 계속 됐다. 마츠카와의 중학교 삼 년은 그렇게 기묘했다. 

  고등학생이 된 마츠카와는 부쩍 키가 크고 그만큼 경험할 것도 많았다. 특히 이성 관계라는 게 얼마나 재미있고 허무한지가 우스울 정도였다. 이와이즈미의 귀여움을 받던 그 초등학생 꼬꼬마가 맞는지,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로 마츠카와는 귀찮은 걸 꺼려했고 매사에 느긋했으며 영리한 말솜씨로 여학생들의 구설수에 빠지지 않고 오르내렸다. 솔직히 남자 된 도리로 타인들로부터 비롯된 인기가 피부로 느껴지는데 만족스럽지 않을 리 없었다.

  첫 여자 친구는 신선했다. 짧은 검은 머리와 대조될 정도로 부끄러움에 붉히는 뺨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연애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았다. 다른 커플이 그러하듯 기념일과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선물도 챙겼다. 적당한 속삭임과 손길로 육체적 관계를 갖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별조차, 쉬웠다. 그렇게 몇 번인가 여자 친구가 쉽게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했다. 다섯 손가락을 넘긴 뒤로는 특별히 세보지도 않았다. 딱 다섯 번째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 받은 직후에 이와이즈미의 메시지가 온 것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요즘 뭐하고 지내냐?

  이와이즈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학교에 발령이 나길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다음 학기부터 선생님이 된다는 이와이즈미의 말에 마츠카와는 새삼 그와 자신의 차이를 실감했다. 시간은 지나 자신은 처음 만났던 이와이즈미의 나이가 되어있었는데 이와이즈미는 이미 저만치 멀리 서있었다. 그렇게 이유 모를 아쉬움을 느낀 것도 잠시였다. 마츠카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이와이즈미를 학교에 처음 부임한 체육 선생님으로 마주쳤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동안 그럭저럭 연락을 하면서도 미리 알려주지 않은 이와이즈미에게 무어라 불만을 표했지만, 이와이즈미는 놀라게 해주려고 했다며 선선히 웃었다. 형의 웃음이 이랬던가. 기억과 묘하게 틀어진 이와이즈미를, 마츠카와는 교정 쉼터 아래에서 한참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너도 엄청 컸다. 키도 이제 나보다 크지? 187cm? 인상도 달라져서 못 알아 볼 뻔 했다. 이와이즈미가 고등학생 마츠카와를 향해 자신의 솔직한 감상을 토로하고 나서야 마츠카와는 부재의 시간의 틈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8살차이. 고등학생이라는 어린이만의 어른이 아니라 스물일곱의 진짜 성인. 그것도 체육 선생님. 이 정도 수식이면 이와이즈미가 더 듬직하게 보이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마츠카와의 눈에 이와이즈미는 기억보다 훨씬 작아보였다.

  단순히 키의 반전 때문이라기엔 마주 보는 데서 자아내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런 걸 연륜이라고 하던가.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도 궁금했다. 이와이즈미 형은 어떤 학교를 다니기에 그렇게 키가 클까? 무슨 생활을 하면 그렇게 멋있는 걸까? 뭘 하면 얼른 고등학생이 될까? 고등학생은 뭘 하기에 초등학교 보다 늦게 끝날까?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남자는 하루 종일 뭘 할까? 끝 없이 늘어지는 의문 중엔 첫 여자 친구와 가졌던 정사 뒤에는, 고등학생의 이와이즈미 하지메도 여자 친구와 ‘이런 짓’을 했을 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간의 궁금증들은 의문으로 남을 뿐 시간의 거리를 메꿔주지 못했다. 차라리 더 벌리면 벌렸겠지. 게다가 수많은 질문을 당사자에게 직접 뱉어내지 못했으니 더했다.

  마츠카와? 봄볕을 피하기 위해 찾았던 등나무 아래에서 이와이즈미가 의아한 얼굴로 마츠카와를 올려다보았다. 맵시 있는 고등학교 교복이 잘 어울린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와이즈미는 지금 교직원 소개 때문에 입은 정장으로 제 몸을 감싸고 있었다. 교복은 그렇게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정장은 안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또 뭐지. 이와이즈미는 생각보다 추억만큼 멋있는 형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차이에 실망하거나 화가 나진 않았다. 그것과는 조금 다른. 아니, 아주 많이 다른.

  아. 젠장. 빌어먹을. 마츠카와는 앞에 있는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것도 잊고 욕설을 뱉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욕 때문에 뒤늦게 수습하기 때문이 아니라 늘어지는 입 꼬리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어느새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 심장이 온 몸에 열기를 전달했다. 간단한 한 가지를 간신히 깨달은 머리가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알아 챈 천재의 그것처럼 즐거운 상상으로 치달았다. 

  멋지고 그렇지 않고, 형이고 뭐고 간에 마츠카와는 눈앞의 이와이즈미를 동등하게 보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중학생 때 보냈던 날들은 사랑의 열병이었고 처음 사귄 여자 친구는 이와이즈미를 많이 닮아있었다. 평생 동안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스스로 움직여 빈자리에 짜 맞추며 웃었다. 완성된 퍼즐은 익히 알고 있는 혹은 알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누군가 이미 지나갔던 고등학생의 끝자락에서, 마츠카와 잇세이는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이름의 첫사랑을 간신히 따라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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