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이와] 소년과 괴물
소년과 괴물
-센티넬버스au
마츠카와 잇세이 x 이와이즈미 하지메
“난 걔 마음에 안 들어.”
세 번째 반복된 불평에 오이카와가 젓가락을 입에 물고 킥킥 웃었다. 점심을 먹는 내내 이와이즈미는 배속 된 팀의 동갑내기에 대해 불평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제대로 말도 안 하고, 콧대도 높고. 나이는 똑같은데 텃세부리는 거야 뭐야?”
“그거 이와 쨩이 요령 없는 거야. 맛층 나랑은 잘 지내는데?”
“맛층?!”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친근하게 애칭을 부르는 소꿉친구에게 이와이즈미는 원인 모를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오이카와는 한 번에 알아 차려 배를 잡고 웃어 이와이즈미의 성질을 긁었다.
“이와 쨩 그 표정 진짜 웃겨! 아야!”
결국 날아든 응징의 주먹에 오이카와가 정수리를 붙잡고 식탁 위에 이마를 붙였다. 이번엔 진짜 아팠던 모양이었는지, 그대로 한참 고개를 들지 못하는 오이카와를 볼거리 삼아 하나마키가 후식으로 나온 푸딩을 반으로 갈랐다.
“그래도 일단 배속 됐으니 잘 지내면 좋지. 텃세는 좀 멀리 나간 거 같은데?”
“그런가.”
“그리고 가이드잖아. 우리야 잘 지내서 손해 볼 건 없지?”
차분하게 핵심을 찍은 하나마키의 말에 이와이즈미의 미간이 모여 주름을 만들었다.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하나마키는 우수한 성적을 받은 요원들이었지만 결국 센티넬이란 적합한 가이드가 없으면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본인이 자신의 한계치를 알고 조절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현장에 투입 되는 횟수도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아주 간단한 일만 맡는 게 실상이었다.
오이카와나 하나마키는 각자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 중이었지만 이와이즈미는 달랐다. 오이카와는 자신의 한계치를 알고 있었고, 하나마키의 능력은 애초에 많은 리스크를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라 사정이 나았다. 가이드 없이 어중이떠중이로 요원이 된 센티넬들이 얼마나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기 때문에, 최근 이와이즈미는 부쩍 초조함을 느끼는 차였다.
“성가셔.”
빈 급식판을 반납 통에 넣는 행동이 괜히 거칠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관계를 싫어할 턱이 없었지만 그저 센티넬과 가이드라는 이유로 맺어지는 의무적 관계는 어쩔 수 없이 꺼려졌다. 특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센티넬과 가이드가 연인 혹은 그에 가까운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아서 더.
“뭐가 성가셔?”
“가이드가 꼭 필요할까?”
“흐음?”
“내 말은. 나도 너처럼 조절할 수 있게 될, 뭐야?!”
다른 생각에 빠져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오이카와겠거니 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말문을 텄는데 상대가 틀려도 너무 틀렸다. 화들짝 놀란 이와이즈미의 시선을 마츠카와가 미묘한 표정으로 받아냈다. 점심을 먹는 내내 이와이즈미가 투덜댔던 장본인이었다.
“오이카와가 가보라고 해서. 무슨 얘긴가 했네.”
“이 망할카와 자식…….”
거칠게 주위를 휘휘 둘러보는 이와이즈미의 시야에 저 너머에서 입을 가리고 웃고 있는 오이카와가 들어왔다. 눈물 날 정도로 상냥한 배려를 선보인 오랜 친구를 향해 이와이즈미가 다정하게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죽인다. 두 번 죽인다. 꼭 죽여 버린다! 다짐을 되새기는 와중에 마츠카와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나도 네 말엔 동의해.”
“엉?”
“나도 싫어하거든. 가이드니, 센티넬이니 하는 거.”
빈 배식판을 내려놓고 이쪽을 보는 눈매가 퍽 부드러웠다. 눈앞의 사람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눈길인가 싶을 정도였다. 마츠카와를 처음 봤을 때 막연한 거부감이 들었던 이유는 그의 알 수 없는 눈빛 때문이었다. 술자리에서 동태 눈깔이라고 표현한데서 오이카와의 폭소를 끌어내는 덴 성공했지만, 정말 술김에 발설한 솔직한 심정이었다. 팀 내에선 그럭저럭 능력 있고 대인관계도 나쁘지 않은 베테랑으로 인정받는 마츠카와 잇세이였지만 이와이즈미는 그 알 수 없는 눈빛에서 막연한 거부감을 느꼈다. 감정은 있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그것.
“그래도 먹고 살자고 하는 거니까 너무 싫어하지는 마. 우리 곧 손발도 맞춰야하고. 윗선에서 시끄러웠으니까.”
“무슨 일?”
“독수리 꼬리잡기.”
어쩌다보니 말이 길어져 두 사람은 식당에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복도를 가로질렀다. 손 두 뼘만큼의 거리감 속에 꽤나 중요한 말들이 오갔다. 독수리는 최근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릴라 테러 조직인 시라토리자와의 속칭이었다. 이와이즈미가 속한 국가 관할 조직의 주적이 바로 시라토리자와였는데, 소규모이지만 강력한 센티넬들의 조직으로 이루어져있어 당국이 농락당하는 것도 벌써 3년이었다. 간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잡으려고 했지만 신출귀몰하고 아직까지 그들의 목적이나 요구사항에 대한 이렇다 할 정보도 부족해 강 건너 불구경 하는 꼴이었다. 그런데 그 시라토리자와에 대항하는 작전이 조만간 일어난다는 건가?
“독수리…….”
윗선에서 어떤 사안들이 오갔는지는 몰라도 사실이라면 중요한 일이었다. 여태 시라토리자와에 대한 지침은 그들이 일으킨 일을 수습하는데 집중 되어 있었지, 먼저 그들을 공략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만약 선제공격이 먹힌다면 몇 년간 속 썩이던 앓는 이를 뽑는 첫 단계가 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작전에 참여한다면, 이와이즈미도 좋은 실적을 올릴 기회가 될 수 있었다.
마츠카와는 깊은 생각에 빠진 이와이즈미를 굳이 방해하지 않았다. 마츠카와가 시선 한 층이 작은 이와이즈미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걷는데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그는 마츠카와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시라토리자와에 흥미가 있는 걸까. 하긴, 이 일을 하다보면 누구든 시라토리자와에 관심이 없을 수가 없겠지. 마츠카와가 속으로 자조했다.
“난 이쪽으로.”
“어? 어, 어. 잘 가라.”
갈림길에서 마츠카와가 서슴없이 왼쪽 길을 택하고 나서도 이와이즈미는 멍하게 막다른 곳에 서있었다. 한 박자 늦게 왼쪽 길을 보았을 땐 이미 마츠카와의 뒷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 * *
그들은 악마야.
여섯 살짜리 남자 아이의 귀에 누군가 망치로 세게 때려 박은 말이었다. 끔찍한 현장을 마주한 어느 구급반의 첫마디였다. 타는 재의 냄새는 지독하게 매캐했고 입술이 버석버석 말랐다. 입 주변은 끔찍하게 찐득 거렸고 발은 땅에 붙여놓기라도 한 듯 움직일 줄을 몰랐다. 마실 것을 사오겠다던 아버지도, 자신보다 조금 더 앞서 걷던 어머니와 형이 있던 자리가 붉었다. 온통 붉은 색이었다. 온갖 냄새가 한 데 섞여 역하게 속을 뒤틀었다. 사람들의 통곡과 비명이 혼재된 실감나는 배경음악은 어린 아이가 겪기엔 너무나도 잔인한 현실이었다. 눈앞에서 가족을 전부 잃은 여섯 살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후에도 사람들의 뇌리에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이 쿄토 센티넬 폭주 사건에서 어린 마츠카와 잇세이를, 출범한지 오래되지 않은 정부의 센티넬 관리 기관 ‘노아’가 구조했다. 그러나 영영 잃어버린 미운 일곱 살은 그 누구도 찾아줄 수 없었다. 가족의 죽음과 맞바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탓이었다. 2월 29일, 마츠카와의 생일 전 날이었다.
* * *
마츠카와의 귀띔은 현실이 되어서, ‘노아’의 미야기 현 지부는 며칠 전부터 정보를 전달하여 의견을 짜 맞추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극비리에 진행되는 이번 작전은 미야기 현 내에 있는 시라토리자와의 아지트를 급습하는 게 주된 임무였다. 얼핏 오르내리는 말에 의하면 시라토리자와의 중요 간부가 아직 아지트에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잡아내기만 하면 시골구석이라 무시 받던 미야기 지부의 주가가 오르는 일이라 은근히 의욕이 넘치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 중에도 미묘한 눈치 싸움은 있기 마련이다. 미야기 지부에는 이와이즈미나 오이카와 등이 포함된 아오바죠사이 팀 뿐 아니라 카라스노, 다테 등의 쟁쟁한 팀들이 있었다. 한 지부 아래서 같은 작전을 수행하는 협력 관계는 맞았지만, 각 팀의 실적은 다르게 매겨지는 만큼 세력 싸움도 만만치 않았다.
아오바죠사이, 통칭 세이죠는 오래 전부터 둘째가라면 서러운 팀이었지만 최근 배속 받은 이와이즈미를 포함한 신입들은 아직 크게 힘을 발휘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오이카와나 이와이즈미, 하나마키는 자신들의 작전 상 임무가 전면전이라는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가장 화려하고 눈에 띄는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중요한 핵심을 파고들지 못하는 건 아깝지만, 일단은 두고 보려고.”
오이카와가 던진 다트가 빠르게 허공을 날아 보드에 꽂혔다. 비교적 중앙에 꽂히는 다트를 본 오이카와가 숨기지 않고 쾌재를 불렀다.
시라토리자와의 아지트에 있을 전투 세력와 전면전을 펼치는 역할은 세이죠가 맡았지만, 그 틈에 파고들어 간부나 필요한 정보를 확보하는 일은 카라스노 팀이 맡았다. 전투력보다는 빠른 스피드를 감안해 내린 상부의 판단에 속이 쓰리긴 했지만, 세이죠는 카라스노에 비하면 이제 막 신생팀을 꾸린 거나 다름없어서 이견을 제기할 수 없었다.
“뭐, 일단은 천천히 돌아가자고.”
오이카와 다음으로 다트의 배럴을 쥔 하나마키가 여유롭게 웃었다. 다음으로, 하나마키가 던진 다트의 팁이 이미 꽂혀있던 오이카와의 다트 정중앙을 가르고 들어가 보드에 꽂혔다.
“맛키 일부러 그랬지! 오이카와 씨 모양 빠지게!”
“당연하지!”
“치사해!”
일부러 오이카와의 다트를 노린 실력도 실력이지만 다트를 강하게 갈라버리는 힘 또한 일반인이 아니었다. 얼마나 몸이 근질거리는 거야. 이와이즈미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쯧쯧 혀를 차며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그래서? 우리 계획은 뭔데?”
“오이카와 씨도 몰라요~. 우리 플랜 설계는 맛층 담당이야.”
“뭐?”
노아의 교육 기관인 ‘에덴’에서 오이카와는 플랜 설계와 지휘 방면에서 뛰어난 가산점을 받은 바가 있었다. 오이카와가 현장에 투입 된다면 당연히 작전을 세우는 데 진두지휘를 맡을 거라는 걸 그 누구도 의심치 않았기 때문에 이와이즈미도 무심코, 세이죠의 계획은 오이카와가 맡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라니. 이와이즈미의 동공이 필요 이상으로 흔들리자 오이카와가 시원하게 웃었다.
“아쉽긴 한데, 짬밥이란 게 있잖아?”
아쉽다고 말하는 사람치고 오이카와는 그다지 억울해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과 마츠카와가 동갑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서로 말을 놓고 있느라 간과했지만, 마츠카와는 엄연한 팀의 선배였다. 원래도 세부 계획을 세운 뒤 현장에서 지휘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고 뭐 하나 빠지는 부분이 없으니 굳이 신참인 오이카와에게 자신의 몫을 넘길 이유는 없었다.
“말 나온 김에 이와 쨩, 쿠니미 쨩이랑은 좀 어때?”
“뭐. 그럭저럭.”
이와이즈미가 쓸데 없는 상념에 잠기기 전에 오이카와가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이번에는 하나마키도 관심이 있는 얘기인지 다트 화살 꾸러미에서 손을 뗐다. 쿠니미는 아직 에덴에서 교육 받고 있는 가이드였다. 에덴은 노아 직속의 센티넬, 가이드 교육 기관이라 종종 교육을 받는 이들 중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선별해 시험 삼아 노아의 현장에 투입하기도 했다. 쉽게 말하면 인턴십이지, 라고 신입 가이드를 붙여주며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에게 설명했었다.
몇 살 어린 후배를 현장에 데려가야 한다는 건 탐탁찮았지만, 이와이즈미는 임무를 코앞에 둔 입장에서 가이드가 더 시급했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다. 정식으로 파트너로서 등록을 한 게 아니고, 그만큼 서로가 잘 맞는진 알 수 없었지만 가이드는 가이드니까. 자잘한 진정 정도는 시켜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무엇보다 쿠니미 아키라라는 후배에게 나쁜 감정이 들지 않았다. 말 수가 적고 의욕 없는 표정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지만, 적어도 어딘가의 누구와는 다르게 속내를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무언가 말을 하면 싹싹하고 똘똘하게 곧잘 따라오는 모습만큼은 에덴에서 추천을 받아 현장에 투입된 우등생의 면모였다.
하지만 걸리는 부분도 있었다. 여태 가이드와 긴밀한 교감을 나눈 적이 없는 이와이즈미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센티넬과 가이드가 협력 관계에서 서로의 능력을 사용하게 되면 강한 공감 상태가 된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공감하는 정도나 범위는 개개인이 달랐지만,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적합할수록 감정의 공유가 강해진다고 한다. 특별히 정식으로 등록이 되지 않은 가이드와 센티넬에게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어째서인지 이와이즈미는 쿠니미에게서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각종 훈련이나 테스트를 해봐도 똑같았다.
맞지 않는다고 봐야하나. 서로 상성이 좋지 않는 센티넬과 가이드가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생전 가이드와 합을 맞춰본 적이 있어야 좋은지 나쁜지 따질 수 있었다. 너무 막연하지 않은가. 쿠니미는 아무 것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나. 내가 너무 예민한가. 온갖 상념에 젖어 하룻밤을 꼬박 지새우고 난 다음 날, 멀쩡한 얼굴의 쿠니미를 보고 나서 이와이즈미는 한 때의 기우로 치부해버렸다. 어차피 쿠니미가 크게 가이드의 역할을 할 일은 없을 거 같아 더 그랬다. 훈련도 순조로웠고, 마츠카와가 주도하여 짜온 계획과 정보에 오이카와의 손이 더해져 훨씬 구체적으로 청사진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쓸데없는 불안 요소를 추가하고 싶지 않았다.
* * *
“건배!”
직장인들의 회식자리는 미쳐 돌아간다. 모든 회식 자리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비슷한 연배들이 모인다면 그럴 확률이 높다. 바로 그들처럼.
“오이카와, 이거 다 마셔라!”
“야, 야. 그거 다 마시면 이 자식 죽어!”
절친한 친구가 죽는다고 걱정하는 이와이즈미의 얼굴은 어째 죽으라고 말하는 얼굴이었다. 미야기 지부 세이죠 팀 신참들이 저들끼리 모여 부어라 마셔라 하는 광경은, 정말이지 그들의 외모가 아까울 지경으로 분별없이 요란했다. 술은 마시라고 있는 거지 친구의 얼굴이 부어버리는 용도가 아니었으니까. 작은 술집을 통째로 빌린 게 아니었으면 동네방네 망신 뻗칠 뻔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마츠카와는 그들의 행동을 관조했다.
좋든 싫든 이제 막 팀 메이트가 된 상황에서 첫 술자리였다. 마츠카와는 여러 번의 경험으로 자신의 호불호와는 별개로 공적인 일에 적을 만들지 않는 편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 이렇게 술이 들어가는 자리가 공적인 자리인가, 사적인 자리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았지만 마츠카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쨌든, 새로 만난 그들의 모습은 유쾌했으니까.
“맛층, 도와줘!”
“적당히 괴롭혀, 적당히.”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이름의 남자는 첫날부터 베실베실 웃으며 저에게 다가오는 사교성이 만만찮아 천하의 마츠카와도 긴장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 사교성이 마냥 좋은 의도라면 모르지만 마츠카와는 어떤 직감을 근거로 오이카와는 절대 적으로 돌리지 않는 게 이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마츠카와의 빠른 수를 눈치 챘는지 오이카와 늘 살살 웃으며 곧잘 친한 척을 했다.
하나마키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딱 순수하게 호감이 가는 모양새랄까. 하나마키는 꾸밈이 없고 좋아하는 일을 좋아할 뿐이었다. 이제 겨우 팀에 들어온 지 일주일 차인 새내기가 개인 정비실을 갖고 싶다며 호기롭게 미조구치 상관에게 요구했다가 까이고 쫓겨나는 장면을 본 뒤로 마츠카와는 하나마키를 미워할 수 없게 됐다.
이와이즈미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은 이와이즈미 같은 타입이 가장 알기 쉽다고 종종 입을 모았지만 마츠카와에겐 이와이즈미야 말로 가장 알기 어려운 타입이었다. 소위 올곧게 다혈질이고, 열혈파라고 정의할 수 있었지만 의외로 냉정했고, 단순한 것 같다가도 때때로 무언가에 깊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고민이 자신의 것과 닮지 않은 듯 닮아 있어서 놀랐었다. 예를 들면, 센티넬과 가이드의 관계와 같은.
마츠카와는 센티넬을 좋아할 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정부가 센티넬 관리 기관인 ‘노아’와 교육 기관 ‘에덴’을 설립해 그들을 관리하기 전까지, 언제부턴가 나타나기 시작한 센티넬들은 땅 속에 묻어둔 지뢰 같은 존재였다. 일반인들이 잘못 밟으면 그대로 터져서 주변을 삼켜버리는 폭탄 같은 존재. 정부가 특수하게 노아를 설립해 센티넬과 가이드를 관리하기 전까지 센티넬들의 폭주 사고는 심심찮게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마츠카와도 그 폭주 사고 때문에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그런 마츠카와가 센티넬과 함께 일을 하는 가이드라는 건 상당히 모순이었지만, 구출 후 가이드의 적성이 발견된 마츠카와에겐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그리고 마츠카와가 센티넬에게 가진 감정은 복수심이라기보다 껄끄러움에 가까웠다. 언제 자신을 해칠지 모르는 짐승과 같은 우리에서 지내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실제로 마츠카와는 단 한 번도 센티넬과 정식 등록을 한 적이 없었다. 필요에 따라 임시로 센티넬을 지원하고, 자잘한 폭주를 가라앉힌 적은 있지만 그 이상의 선은 넘지 않았다. 이 이상은 자신이 감당할 부분이 아니라며 미리 그어둔 금 안에서 관망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는 중에도 많은 센티넬과 가이드들이 온갖 이유를 들며 죽어갔다. 비극이었다. 마츠카와는 관람석에서 박수를 치지 않는 관객이었다.
“야.”
혀가 꼬부라진 발음으로 이와이즈미가 마츠카와를 불렀다. 바로 옆자리에서 부르는 거라 그리 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마츠카와는 제법 놀랐다.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부르는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기 때문에.
“너 짜증나.”
그래. 그러니까 그동안 안 불렀겠지.
“나도 너 짜증나.”
마츠카와의 말에서 피식피식 웃음이 샜다. 이와이즈미의 등 뒤에서 네가 튀김 하나를 더 먹었느니, 내가 새우 꼬리만 먹었느니 하고 싸우는 오이카와와 하나마키도 웃길뿐더러 만취한 상태로 고백 아닌 고백을 하는 이와이즈미도 우스웠다. 거기에 유치하게 대응하는 자신도 좀 취기가 올랐나 싶었고.
“니가 뭐가 잘났다고, 어?”
“거기서 더 말 하면 분명 내일 후회할 텐데, 이와이즈미.”
“세상 불행 다 끌어안은 표정으로 다니냐고. 동태눈깔로.”
“푸하하! 지금 맛층더러 동태눈깔이라고 한 거야, 이와 쨩?”
귀도 밝은 오이카와가 저 너머에서 폭소하는 동안 술 취한 얼굴을 느긋하게 턱을 괴고 감상하던 마츠카와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내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반박의 물음을 겨우 막고 술 한 잔으로 꿀꺽 삼켰다. 물론 사람의 눈을 갖고 죽은 생선에 비유하는 버릇은 꽤 지독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보단 다른 구석이 더 신경 쓰였다.
“그러면서, 어? 사람 짜증나게 쳐다보고. 너, 내가 얼마나 너랑 똑같은, 시선 받으면서 지냈는지, 모르지. 새끼야.”
이와이즈미는 다른 두 사람보다 센티넬의 발현이 늦었다고 들었다. 중학생 때까지도 징조가 없다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각성이 되었고, 프로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던 꿈을 접어야 했다고 했다. 어느 운동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가 배속되기 전에 미리 받아본 서류상엔 그렇게 적혀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발현, 고등학교 졸업.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단어 자체는 쉬워 보이지만 마츠카와의 눈에는 이와이즈미가 겪었을 일들이 눈에 선했다. 고등학교 2학년과 졸업 사이에 경험했을 일들. 노아에 속해 적절한 데서 사건 사고를 해결하는 센티넬들은 상황이 나았지만 그렇지 못한 센티넬들은 사회에서 강제로 격리당하고 위험 인자 취급받기 일쑤였다. 사회적으로도 센티넬의 왕따 문제가 인권 보호 협회에서 툭하면 걸고넘어지는 문제니 알만했다.
그러니 각성이 된 센티넬들은 대부분 곧바로 노아나 에덴에 찾아가 특수한 교육을 받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는 동시에 정부의 보호 아래에 있길 원했다. 센티넬로서의 센스도 나쁘지 않은 편인 이와이즈미가, 손가락질 받으며 고등학교 졸업까지 버틴 이유는 뭐였을까.
마츠카와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의외로 날카롭기도 하네. 이와이즈미가 자신에 대한 마츠카와 본인의 시선을 알고 있었다는 것, 마츠카와를 마냥 싫어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는 것, 그러면서도 말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런’ 과거를 갖고 있었다는 것에 불현 듯 흥미가 동했다.
다행히 이와이즈미는 마츠카와의 표정 변화를 하나하나 살피지 못할 정도로 인사불성이었다. 오히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다가 빈 술잔을 채우라는 듯 손을 앞으로 내미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공무원 아저씨였다. 마츠카와가 픽 웃으며 술병을 집어 들어 이와이즈미의 잔을 채워주었다.
“그러지 마라.”
괴물. 마츠카와가 채워준 마지막 잔을 마신 이와이즈미가 앞으로 푹 고꾸라지며 마지막 말과 단어를 중얼거렸다. 마츠카와에게 하는 말인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혹은 둘 다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술의 뒷맛을 씁쓸하게 만드는 안주로는 충분한 물기 묻은 목소리였다.
그날 밤 마츠카와는 꿈에서 교토 센티넬 폭주 사건의 한 가운데에 서있었다. 미처 끊지 못한 담배를 물고 있는 마츠카와는 더 이상 여섯 살 어린 소년이 아니었다.
* * *
초겨울을 뚫는 이와이즈미의 팔과 다리가 무자비하게 소총으로 무장한 이들을 픽픽 쓰러트렸다. 센티넬이 아니었던 청소년기에도 좋은 신체를 갖고 있었으니 각성 후에 접근전에 특화 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예상은 했지만. 적을 표시하는 빨간 점이 이와이즈미를 나타내는 파란 점 주변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을 확인한 마츠카와가 혀를 찼다.
-혀는 왜 차냐.
“대단해서.”
그걸 또 귀신같이 들어서 이번엔 그냥 조용히 혀만 내두르기로 했다. 마츠카와가 옆에서 비스듬히 대기하고 있던 쿠니미를 쳐다보자 쿠니미가 끼고 있던 헤드셋의 마이크를 입 쪽으로 가까이 붙였다.
“지원 사격 부탁드립니다, 하나마키 선배.”
-라져.
하나마키의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저격 총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고 오래지 않아 비명 소리가 들렸다. 작전은 종반에 접어들고 있었다. 세 사람이 전투를 벌인 지도 벌써 세 시간 째였다. 본부에서 철수해도 좋다는 지시가 떨어지지 않아 슬슬 불안한 차였다. 세 사람, 특히 계속 지상에서 싸움을 벌인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체력이 바닥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맛층, 우리 좀 빠져야할 거 같아.
불안한 마음이 전염이라도 됐는지, 오이카와의 심각한 목소리가 무전을 통해 흘러들어왔다.
-전차라니, 미친 것들 아냐?!
뒤이어 경악한 이와이즈미의 고함과 함께 마츠카와가 빠르게 고개를 들어 비디오 화면을 보았다. 구식이긴 했지만 박격포가 달린 전차 한 대가 건물 문을 부수며 나오고 있었다.
-일단 지원 차량부터 얼른 빼. 맛키, 듣고 있지? 연막탄 있어?
-아니. 섬광밖에 없다.
-없으면 맛키도 빠져. 총알론 뚫을 수 없으니까.
침착하고 재빠르게 진열을 가다듬는 오이카와의 지휘에서도 긴장감이 느껴났다. 센티넬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기본 구조는 인간이니까, 인간의 살보다 더 단단한 장갑차를 이기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오이카와 너도 비켜. 내가 한다.
-이와 쨩!
-넌 도움 안 되니까 내가 한다고.
-그게 아니라!
-저걸 그냥 보낼 순 없잖아!
마츠카와가 타고 있던 지원 차량이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가이드들이 지원하고 대기하는 차량은 전차의 사정거리 밖으로 이동하려는 모양이었다. 나름의 확신을 가진 이와이즈미의 선포 이후 다시 현장 지휘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쿠니미 쨩.
“네.”
-혹시 모르니 대기해줘.
쿠니미가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입술을 물었다 놨지만 오이카와는 후방 지휘실 상황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재차 부탁하지 않았다. 쿠니미를 대기시킨다는 건 센티넬이, 이와이즈미가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용한 무전 사이로 감히 끊을 수 없는 긴장이 흘렀다. 센티넬의 위험은 그의 목숨이 아니라, 센티넬 자체가 위험한 폭탄으로 변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만전 상태의 이와이즈미라면 가뿐할지 몰랐지만, 체력을 거의 소진해버린 이와이즈미가 혼자서 무사히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지는 미지수였다.
-왜 니들이 쫄고 그래.
이와이즈미의 말이 침묵을 끊어버리기 무섭게 포격이 시작됐다. 차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쿠니미가 중심을 잃어 바닥에 고정된 의자를 붙잡았다. 마츠카와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와이즈미가 전차에 달려드는 모습은 곰 무리에 달려드는 검은 토끼처럼 조마조마했다.
오이카와는 도와줄 수 없는 건가? 마츠카와는 오이카와가 상당한 센티넬이고, 이와이즈미와 함께 현장에 투입 될 정도의 전투력을 갖추고 있는 것도 알았지만 정확히 그의 능력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전차를 상대로는 쓸모없다는 걸 보니 물리적인 부류가 아닌 것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같은 자리에 설 수 없는 입장에선 마냥 답답하기만 했다. 마츠카와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하나, 둘. 세차게 지면을 박차고 오르는 이와이즈미의 도움닫기가 강력해 공중에 계단이 있는 줄 알았다. 흡사 액션 영화라도 되는 듯 다리의 움직임만으로 유려한 선을 그리며 이와이즈미가 빠르게 전차의 앞에 올라탔다. 쾅! 인간의 다리가 전차의 갑판에 올라타는 소리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둔탁한 타격음이 울렸다. 검은 옷의 이와이즈미가 바로 위로 올라서려는 순간.
-이와 쨩!
오이카와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전차의 포신이 이와이즈미 쪽으로 빠르게 돌아 그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옆구리가 찢겨 허리가 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일격이었다. 마츠카와가 저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필 먼지가 자욱하게 껴 이와이즈미가 어떻게 되었는지 볼 수 없었다.
“제가 나가서…….”
-아직!
외침으로 먼지를 날려버리기라도 한 건지. 얼토당토 않는 생각을 한 마츠카와의 모니터에 다시 전차의 화면이 깨끗하게 잡혔다. 이와이즈미는 나가떨어지지 않았다. 포신에 왼쪽 팔을 걸고 발을 전차 위에 디딘 채 매달려 버티고 있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마츠카와가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 내렸다. 이와이즈미의 팔에 걸린 포신이 그를 떨쳐내려 부자연스럽게 삐걱거렸다.
-쿠니미 쨩. 준비해줘.
오이카와의 지시와 함께 쿠니미가 차 문으로 향해 문을 열고 나갔다. 박격포가 떨어질 수 있는데도 차분한 태도였다. 전차 한 대보다 더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음을 직감한 탓이었을까. 마츠카와는 여전히 이와이즈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인간의 힘이 아닌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버틴 것도 모자라 포신을 밀쳐내며 제 자리에 돌아온 이와이즈미가 반동을 이용해 전차의 맨 위로 올라서 꼭대기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억지로 비틀어 열린 전차의 입구에서 이와이즈미의 손에 의해 남자들이 억지로 끌려나왔다. 전차 한 대를 맨 몸으로 상대하는 이와이즈미에게 그들도 질린 모습이었다.
-이와 쨩, 괜찮아?
급박한 상황은 그럭저럭 넘겼지만 오이카와의 통신은 계속 되었다. 오이카와도 자신과 같은 것을 보기 때문에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거라고, 마츠카와는 확신했다. 이와이즈미가 제 옆구리를 감싸 안고 전차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었다. 모니터 한 구석에서 쿠니미로 보이는 이가 이와이즈미에게 달려가고 있었다. 이와이즈미가 앞으로 고꾸라지려다 발을 헛디뎌 전차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징조가 좋지 않았다. 차 안인데도 갑자기 피비린내가 진하게 풍겨왔다.
-이와…….
모니터 상에서 가라앉던 먼지가 이와이즈미를 중심으로 확 퍼져나갔다. 그가 기대고 있던 전차의 포신이 말도 종잇장처럼 우그러들었고, 무전에선 오이카와의 신음과 하나마키의 고함이 들렸다.
-쿠니미!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갔다. 이와이즈미의 주변에 이미 쓰러져 있던 전차병들이 피를 토하며 경련했다. 마츠카와도 온몸에 느껴지는 강한 충격을 느끼며 비틀거리다 옆에 세워둔 테이블을 붙잡아 겨우 넘어지는 것은 면했다. 이미 시동이 걸려있던 지휘차량이 자리를 벗어나려는지 조금 움직이다가 갑자기 멈췄다. 마츠카와가 쓰고 있던 헤드셋을 벗고 유리창 너머의 운전석을 확인했다. 운전병이 충격으로 기절한 모양인지 자동차 핸들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젠장.”
가이드인 마츠카와도 충격을 받을 정도인데 일반인이 기절이라면 그나마 양호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가 계속 된다면 누구의 목숨도 장담할 수 없었다. 마츠카와가 벗은 헤드셋을 다시 귀에 가져갔다.
-쿠니미! 괜찮아?
-맛층, 맛층! 듣고 있어?
“응. 듣고 있어.”
마츠카와의 손가락이 버튼 몇 개를 누르자 전차를 비추던 카메라가 와이드로 빠져나와 바깥 상황을 넓게 중계했다. 오른쪽 구석에 오이카와와 하나마키, 그리고 쿠니미가 있었다.
-쿠니미 쨩이 접근을 못하고 있어.
마이크가 없는 쿠니미 대신 오이카와가 상황을 설명했다. 일 분 일 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경련하던 전차병들은 이제 움직임이 없었다. 죽었겠지. 그 때 그 사람들처럼. 전에 없이 싸하게 식는 가슴을 느끼며 마츠카와가 천천히 시선을 떨어트렸다.
-맛층?
오이카와가 저를 부르는 저의는 알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첫 인상대로 무서운 녀석이라는 걸 확신하며 마츠카와가 눈을 꽉 감았다. 강하게 쥐고 있던 주먹이 스르륵 풀렸다.
“내가 갈게.”
지휘 차량에서 내린 마츠카와를 집어 삼킬 듯이 모래 폭풍이 불었다. 1차 쇼크는 지나갔지만, 이대로 이와이즈미가 방치 된다면 2차, 3차 쇼크가 이어질 터였다. 따가운 눈을 어렵게 뜬 채 마츠카와가 걸음을 옮겼다. 힘들게 차량 앞으로 돌아온 마츠카와의 눈에 가장 먼저 오이카와와 하나마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어쩔 줄 모르는 쿠니미가 보였다. 눈을 한번 꽉 감았다 뜬 마츠카와가 몸을 왼쪽으로 돌렸다. 그곳엔 이와이즈미가 있었다. 카메라 렌즈 따위의 여과를 거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이와이즈미 하지메.
괴물. 그 술자리에서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던 네 목소리가 모래바람 속에서 들려왔다. 그들은 악마야. 여섯 살 때 들었던 경멸에 찬 누군가의 목소리도 함께였다. 죽어버린 사람들의 피비린내도 함께였다.
정말 괴물이라고 생각해? 그간 묻지 못한 물음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한 글자씩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등학교를 포기하지 못했던 이와이즈미와 센티넬로서 초조함을 느끼던 이와이즈미는 왜 그렇게 강한 걸음을 갖고 하루를 누비고 다녔을까. 스스로를 괴물로 치부하며 괴물 아닌 괴물로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감정과 불안함을 숨기고 다녔을지. 그걸 모르는 녀석들은 다 바보다. 네 눈엔 그게 이렇게나 잘 보이는데. 네가 나를 보았던 것처럼.
“이와이즈미.”
입술 사이로 사정없이 거친 모래가 달라붙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츠카와는, 이와이즈미가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너는 그저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을 뿐이었다. 갑자기 달라진 너 자신은 그냥 평범한 남고생으로 남고 싶었고, 그러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 땐 다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남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간 겪었을 수많은 질책과 따가운 눈들을 짐작한다면 참 소신 있고 당당한 태도였다. 그러나 그 속에 남아 산산이 흩어진 잔해들을 돌봐줄 사람은 없었겠지. 그리고 지금, 그 사람이 내가 되고 싶었다.
마츠카와는 미리 그어둔 선을 넘고 있었다. 아아, 이렇게 나름의 철칙이 깨지는구나. 손으로 가린 눈 밑의 입이 묘하게 웃고 있었다.
이와이즈미의 앞에 도착한 마츠카와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맨바닥에 꿇린 무릎은 좀 아팠지만 두 사람을 감싸 돌고 있는 모래바람이 서서히 가라앉는 걸 알 수 있었다.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가이드의 진정 효과가 나타나는 걸 보니 새삼 신기했다. 이런 건 본 적이 없는데.
주변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기절한 이와이즈미는 잠든 듯이 평온했다. 차라리 기절해 있는 게 편한 건지,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보통 마츠카와가 본 이와이즈미는 미간에 주름이 잔뜩 잡히며 인상을 쓰고 있었다. 마츠카와가 천천히 손을 올려 이와이즈미의 뺨에 올렸다. 흙과 모래, 피가 묻은 뺨과 입가가 거칠었다. 이래서야, 농담으로라도 잠자는 공주님이라곤 못하겠네.
하지만 눈은 떠줬으면 해. 네게 걸고 싶은 기대와 묻고 싶은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니까. 마츠카와의 상체가 부드럽게 굽었다. 센티넬과 나눈 첫 키스의 맛은 전혀 달콤하지 못한 이 땅의 것이었다. 우리가 발붙이고 함께 살아 나갈 이 땅.
* * *
“많이 혼났어?”
이리하타 상관의 방에서 나온 이와이즈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마츠카와를 쳐다보았다. 눈을 뜬 후 모든 상황을 듣고 난 뒤 종일 피해 다녔는데, 이렇게 문 앞에서 진을 치고 있으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어.”
작전 중 폭주로 인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죽이고, 아군에도 여럿 피해를 입혔다. 세이죠는 아주 소수로 임무를 진행했기에 피해가 아주 크진 않았지만, 어쨌든 잘잘못은 따지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이와이즈미가 크게 숨을 내쉰 뒤 마츠카와를 쳐다보았다. 찔리는 구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 마츠카와가 뜨끔한 마음으로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역시 기절해 있을 때가 좀 더 귀엽지. 찌를듯한 가시 같은 시선에 마츠카와는 일단 두 손을 들어 항복의 제스쳐를 취했다.
“내가 잘못 했…….”
“잘 부탁한다.”
엉? 마주 본 두 사람이 다른 의문을 가진 같은 물음표를 내밀었다. 수 초간 멀뚱히 서로를 바라본 끝에야 이와이즈미가 먼저 말했다.
“이리하타 씨가, 우리 둘이 그, 뭐냐. 그거.”
말문은 텄는데, 쉽게 말하지 못하는 이와이즈미의 얼굴에 어느새 발갛게 열이 올랐다. 설마 부끄러워하는 건가. 잠깐이었지만 이와이즈미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건네던 마츠카와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거?”
“……너 알고 있지.”
얄미운 자식. 이와이즈미가 쏘아보자 마츠카와가 들고 있던 손을 살짝 흔들었다.
“……네가 내 가이드라고…….”
웅얼웅얼 말하는 이와이즈미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마츠카와는 솔직히, 이와이즈미가 안 하겠다고 날뛸 줄 알았는데 이 정도면 훨씬 양호한 반응이었다. 마츠카와가 항복의 표시로 들고 있던 손을 내리고 이와이즈미에게 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괜히 우물우물하던 이와이즈미도 무언가 큰 결심을 한 것처럼 눈을 한 번 감았다 뜨곤, 마츠카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잘 부탁해.”
“어. ……근데 잘못했다고 한 건 뭐냐?”
“아, 그거.”
지금 얘기해도 되려나. 손을 놓은 마츠카와가 시선을 비스듬히 올리며 고민에 빠졌다. 이와이즈미가 먼저 자신의 용무를 말한 시점에서 모른 척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자는 사람한테 강제로 키스 했, 윽.”
“알고 있으니까 말하지 마라.”
복부에서 아릿하게 올라오는 통증에 마츠카와가 말을 끝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정식으로 등록한 센티넬과 가이드가 아니고, 상부에서 인정해준 풋내기 콤비에 불과했지만 벌써부터 아낌없이 보여주는 애정에 마츠카와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마츠카와가 이와이즈미의 폭주를 막으며 나름대로 그에게 애틋한 감정을 자각했고 스스로에게 큰 변화를 수용했다. 하지만 기절해 있던 이와이즈미는 일어나보니 모든 상황이 정리 되었고, 자신은 전차 한 대를 혼자 격퇴했지만 혼쭐이 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이 콤비로 반 강제 지정이 되었다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면, 마츠카와는 앞으로 험난한 길을 예상한 터였다. 멋대로 입술을 훔친 대가로 주먹 하나면 싼 편이었다.
“미쳤냐?”
“그럴 리가.”
배를 감싼 마츠카와가 대뜸 소리 내어 웃기에 이와이즈미가 당황해 아무 말이나 물었다. 허리를 들며 부정한 마츠카와가 웃는 눈매로 찬찬히 이와이즈미를 시선에 담았다.
“넌 좋은 녀석이야.”
낯간지러운 말에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적신호를 좋은 신호로 받아들이며 마츠카와가 말을 이었다.
“내가 그렇게 도와줄게.”
이와이즈미 하지메는 괴물과는 거리가 먼 남자였다. 설사 그럴 가능성이 있더라도 그렇게 될 바에야 죽는 편을 택할 테지. 이와이즈미가 정신을 잃고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마츠카와는 자신이 그의 전투를 보며 제법 가슴 졸여 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네가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다른 사람을 다치는 괴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복잡하게 돌아왔지만 결론은 단순했다.
혼자서 평범하고 안전하게 살 수 없다면, 그리고 그 삶을 내가 도와줄 수 있다면. 희한하게도 이와이즈미의 옆을 지킨 마츠카와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이 맴돌았다.
이제 다 자란 여섯 살 소년은 괴물이 될 뻔한 남자의 앞에서 저의 과거를 한 조각 남기지 않고 털어냈다. 돌조각 하나로 그어둔 금은 생각보다 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고 자신의 의지에 뿌듯함마저 느껴졌다. 대의를 위한 사명감을 갖게 된 건 결코 아니었지만, 단 한 사람. 그 사람이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게 할 능력이 저에게 있음을 마츠카와는 처음으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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