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무] Happy Birthday and…….
시리무, 제릴
리무스 생축! 사랑해!
순간이동으로 어느 거리에 뜬금없이 내려선 리무스는 익숙하게 발길을 돌려 가까운 집으로 향했다. 저녁 여섯시도 되지 않았지만 고드릭 골짜기의 거리는 조용했다. 노을이 드리운 고즈넉한 거리를 걷는 동안, 리무스는 이 동네를 선택한 친구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재미있는 것이 많고 변화무쌍한 호그스미드 같은 마법사 마을을 좋아하지 않을까 했는데, 제임스는 의외로 결혼생활 장소로 고드릭 골짜기를 고른 것이었다. 그가 거의 일생을 지낸 곳이기도 했지만, 굳이 시끄러운 곳에 있지 않아도 자신이 시끄럽게 만들 수 있으니 장소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것이 제임스의 주장이었다. 마법사인 이상 주거지와 번화가 사이의 거리엔 의미가 없었으니 상관없지만, 참 제임스답다면 제임스다운 주장에 묘하게 납득하기도 했다. 그렇게 포터 부부가 지내는 집 앞으로 들어서던 리무스는 하마터면 허공에서 나타난 다른 사람과 부딪힐 뻔했다.
“레귤러스! 괜찮아?”
“……네. 나 제대로 서있는 거 맞죠?”
“내가 일초만 더 빨리 왔다면 내 머리 위에 서 있었을지도 모르지.”
부딪혀 넘어질 뻔한 레귤러스를 아슬아슬하게 붙잡아준 리무스가 그를 부축해주었다. 건네는 농담은 가벼웠지만 순간이동은 이동하는 위치에 누군가 있으면 꽤 심각한 충돌 사고를 일으키기도 하고, 혹은 원래 자리에 있던 사람의 몸에 이동하는 사람의 몸이 합쳐지는 괴상한 사고가 나기도 했다. 가능성 있는 일을 상기한 레귤러스가 한숨을 쉬고 용케 떨어트리지 않은 양손의 짐을 추슬렀다.
“그건 다 뭐야?”
“퇴근할 때 부탁 받은 거요. 릴리 씨랑 위즐리 부인이 엄청 성대하게 준비하실 건가 본데, 누구누구 씨는 좋겠어요.”
쑥스러운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리무스가 짐 하나를 나눠들고 앞서 정원에 깔린 돌길을 밟았다. 몇 년간 자주 느낀 자글자글한 감각은 낯설지 않았지만 포터 하우스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선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한 항상 예상 밖에서 뛰어노는 사람들이 집 안에 모여 있었으니까. 그리고 리무스의 추측은 현관문에서부터 맞아 떨어졌다.
“으앗!?”
“해리!”
이곳에 도착한지 5분 만에 벌써 두 명의 이름을 감탄사로 외친 리무스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품으로 뛰어든 작은 아이를 아슬아슬하게 안았다. 정확히는 받아냈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꼬마 아이를 안은 것치곤 명치 근처가 얼얼하게 아픈 것이, 내려다보니 어린이용 빗자루도 함께였다.
“고마워 무니! 후우……. 해리 이 녀석!”
해리를 쫓아온 제임스가 숨을 몰아쉬며 리무스에게 인사를 건네고 짐짓 해리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보아하니 어린이용 빗자루를 타고 집안을 누비는 해리를 잡기 위해서 용을 쓴 모양인데, 그 제임스를 숨차게 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리무스가 제 목을 꼭 안고 까르르 거리는 해리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해리가 아빠를 꼭 닮았네.”
“그렇지?”
잔소리 하려던 거 아니었어? 금방 표정이 풀어지는 제임스에게 리무스가 덧붙이자 아무래도 좋다는 듯 제임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해리는 호그와트에 들어가면 엄청난 퀴디치 선수가 될 거야.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장담하는 제임스가 싱글벙글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릴리한테 비밀인데, 이 빗자루 사실 3세용이 아니라 7세용인…….”
“계속 그러고 서 있으면 릴리 씨한테 내가 다 말할 거예요. 이거 좀 무거운데.”
“레그!”
묵묵히 리무스의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레귤러스가 못 참고 불쑥 끼어들자 가장 먼저 그를 반긴 것은 해리의 외침과 포옹이었다. 비행에 가까운, 겁 없는 점프에 레귤러스는 기겁을 하며 아슬아슬하게 해리를 받았다. 받아낸 레귤러스나 어깨를 도움닫기로 내준 리무스나 놀라서 헉 소리를 냈지만, 정작 아이 아버지 쪽은 태연하게 휘파람을 보탰다.
“역시 수색꾼 출신이야.”
“당신 아들 아니에요? 걱정이란 걸 해보는 게 어때요.”
퉁명스럽게 던지는 말 한마디만큼이나 무심하게 짐을 제임스에게 건네고 레귤러스가 해리를 고쳐 안았다. 레귤러스가 해리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저 현관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제임스는 레귤러스가 건넨 봉지 안을 슬쩍 살펴보고 리무스에게 빈 손을 내밀었다.
“무니도 줘. 내가 부엌에 갖다 줄게.”
“도와줄게.”
“리무스는 오늘 주인공인데 그냥 제임스 줘요. 오늘 월차 쓰고 남아도는 게 힘일 텐데. 지팡이 안 갖고 나왔어요?”
여전히 빗자루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해리를 레귤러스가 바닥에 내려주자 해리가 빗자루를 땅에 끌며 쪼르르 복도 안쪽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세살이 타고 들고 다니거나 타기엔 커보였는데 해리는 거치적거리거나 무거워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지팡이가 없는 제임스를 돌아본 레귤러스가 제 지팡이를 꺼내 휘두르자 두 짐 덩어리가 허공으로 붕 떴다.
“어, 두고 나왔다. 그리고 내가 비축한 힘은 해리 동생을 만들어 주기 위해…….”
“형!”
제임스의 말을 자르며 복도로 들어가 버리는 레귤러스에 제임스가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쟨 이런 얘기 은근히 쑥스러워 하더라. 장가는 가려나.”
“애인 있는 것 같던데?”
“오, 정말? 그건 또 좋은 소식이네. 아무튼! 생일 축하해, 친구.”
오늘은 너의 날이니까 사양 말고 신나게 즐기도록 해. 안경 너머로 가볍게 윙크를 날린 제임스를 따라 복도를 지나니 넓은 거실이 나왔다. 거실에는 네 명의 아이들과 그들을 한꺼번에 상대하며 깔려 있는 한 마리 커다란 검은 개가 있었다. 개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본 리무스가 웃음을 터트렸고 쌍둥이 형제 밑에 깔려 있던 검은 개는 누운 채로 고개를 들고 꼬리를 흔들었다.
“재밌어 보이네, 패드풋.”
“안녕 하세요, 루핀 교수님!”
교수님? 패드풋을 몸으로 누르고 있던 빨간 머리의 다섯 살 먹은 쌍둥이가 이구동성으로 외치자 리무스가 난감하게 웃었다. 나 아직 교수 아닌데? 의아하게 제임스를 쳐다보니 그가 어깨를 으쓱이더니 리무스의 귀에 속닥거렸다.
“아까 위즐리 부인이 너한테 잘 보이라고 가르치시더라.”
농담인지 진담이지 모를 친구의 말에 적당히 수긍하고 수줍음 타는 론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리무스가 다시 패드풋에게 시선을 주었다. 자꾸 일어나려는 패드풋을 타고 드는 쌍둥이와 패드풋의 옆에 꼭 붙어서 떨어지려하지 않는 해리 덕에 리무스에게 닿은 것은 패드풋의 낑낑거리는 보챔과 안타까운 눈초리뿐이었다. 리무스와 인사를 하고 싶은데 저에게 붙어있는 아이들을 마구잡이로 떨쳐낼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부엌 가서 먼저 인사하고 올게, 패드풋.”
“힘내 친구~.”
패드풋의 불만을 뒤로한 리무스가 미안한 표정을 남기고 제임스와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 넓은 부엌은 비교적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제임스는 그 틈을 잘도 비집고 들어가 제 아내를 뒤에서 잽싸게 안기 바빴다. 주책이라고 타박하며 제임스의 손등을 찰싹찰싹 때리는 릴리의 손이 매워 보여 리무스는 저도 제 손등을 문질렀다.
“레귤러스가 역시 제대로 사왔구나. 오, 리무스! 생일 축하해.”
“감사해요 위즐리 부인.”
작고 통통한 위즐리 부인이 바쁘게 식재료를 꺼내보다가 리무스를 발견하곤 환하게 웃으며 팔을 벌려 끌어안았다. 가볍게 뺨 인사를 나눈 후 그녀의 환대에 감사를 표한 리무스는 릴리와 앨리스, 프랭크와도 기분 좋은 인사를 나누었다. 안으로 더 들어가려 하자 앨리스가 아직 케이크를 공개할 수 없다며 막아서는 바람에 리무스는 양 손을 들어 올리며 물러나야했다.
뒤늦게 부엌 입구 쪽에 기대선 레귤러스까지 포함해서, 포터 하우스의 부엌은 활기가 넘쳤다. 벌써 고소한 냄새와 함께 김을 뿜으며 달그락 거리는 냄비가 있었고 릴리와 앨리스는 고심하며 지팡이로 오븐의 불을 조절하고 있었다. 대충 보기에도 이미 많은 것들이 준비된 것 같았는데 위즐리 부인은 프랭크의 도움을 받아 레귤러스가 사온 식재료를 살펴보고 손질하기 시작했다.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무니?”
부엌 풍경을 찬찬히 살펴보던 리무스의 눈길을 단번에 잡아낸 제임스가 어느새 그의 옆으로 다가와 옆구리를 꾹 찔렀다. 옆구리를 감싼 리무스가 긍정의 뜻으로 어깨를 으쓱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제임스가 픽 웃었다.
“나를 믿어 친구. 넌 이 모든 걸 받을 자격이 있어.”
“그렇고말고. 도움을 요청하는 친구를 무시하는 프롱스의 말이지만 그건 믿어도 돼.”
뜻밖의 목소리에 두 사람이 돌아본 곳엔 시리우스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서 있었다.
“오. 드디어 탈출 했어?”
“해리가 레그 찾아서 데려다주고 왔다.”
우리 아들은 아빠보다 레그 삼촌을 더 좋아하더라. 짐짓 흑흑거리던 제임스가 아버지의 권위를 되찾겠다며 거실로 떠나고 빈자리에 시리우스가 리무스의 옆에 서서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눈가에 가볍게 닿는 따뜻한 입맞춤에 리무스가 부드럽게 눈꼬리를 접고 시리우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생일 축하해.”
“고마워.”
입맞춤만큼이나 따뜻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간지러웠다. 허리로 내려온 시리우스의 손을 슬쩍 풀어낸 리무스가 경고하듯 시리우스를 올려다봤지만 모른 척 억울하단 표정을 하는 시리우스 덕에 또 한 번 못이기는 척 푸스스 웃어버렸다.
“나 오늘 너무 많이 웃는 것 같아.”
“많이 웃으면 건강해진대.”
프롱스가. 출처까지 정확하게 표기하는 시리우스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 리무스가 시리우스의 팔을 잡아 제 어깨에 둘렀다. 시리우스의 팔이 단단히 리무스의 어깨를 감싸는 찰나, 아삭 거리는 사과 먹는 소리와 함께 레귤러스가 일침을 가했다.
“부엌 바닥에 자리 깔아줄까?”
“부러우면 부럽다고 해.”
허. 개 아니랄까봐 개소리한다. 기찬 한숨을 뱉은 레귤러스가 발로 시리우스의 무릎 뒤를 찼다. 시리우스가 짜증스레 중심을 잡았지만 그새 릴리의 부름을 받아 부엌 안쪽으로 잽싸게 사라진 그를 잡을 순 없었다. 툴툴거리는 시리우스와 뺨을 문지르는 리무스를 기어이 쫓아낸 것은 위즐리 부인이었다. 너희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다며 가서 애들을 봐주라는 말에 잔소리 들은 아들마냥 시리우스가 먼저 느릿느릿 뒤를 돌았다. 여태 패드풋의 모습으로 애들을 상대해준 시리우스를 생각하니 문득 안쓰러웠다. 어차피 제임스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 리무스가 시리우스의 손을 잡고 위층으로 데려갔다. 그리곤 시리우스나 리무스가 놀러오면 종종 내주는 손님방의 문을 열었는데, 두 사람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방 안에는 해리 또래의 남자 아이가 문 앞에 서있었고, 아이도 놀란 모양인지 시리우스와 리무스를 멀거니 쳐다보기만 했다. 네빌이 여기서 자고 있었구나. 비몽사몽간에 시리우스와 리무스를 알아보지도 못한 건지 네빌이 아무말도 않자, 웬일인지 시리우스가 네빌을 안아주었다. 네빌은 시리우스의 품안에서 어색하게 꼬물거렸지만 등을 다독여주니 다시 눈이 가물거렸다.
“생각보다 잘 하네?”
“나 해리 대부야.”
해리가 레그를 쫓아다니기 전엔 내가 반은 안고 키웠잖아. 네빌의 눈이 감긴 걸 확인한 시리우스가 조심히 침대에 네빌을 눕혔다. 그랬지. 요즘 해리가 눈만 뜨면 레그 찾는다더라. 아쉬워하는 친부의 모습을 떠올리며 조용히 의자에 앉은 리무스가 물끄러미 시리우스를 올려다보고 양손을 뻗었다. 특별한 말이 없어도 한 걸음에 리무스의 앞에 선 시리우스가 양손을 마주잡고 허리를 숙여 짧게 입술을 포갰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시리우스의 축하를 처음 받는 것도 아니지만 매년 처음인 것처럼 느껴졌다. 워낙에 남에게 감사나 축하, 사랑과 같은 낯간지럽거나 새삼스러운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툰 그라 처음엔 말 한번 꺼내는 것도 어려워했다. 처음 친구가 됐을 때는 리무스 본인이 축하 받는 것을 껄끄러워 했고, 여러 일을 통해 시리우스와 연인이 된 후엔 시리우스가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생일 축하해, 혹은 네가 있어줘서 다행이야 같은 종류의 말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는지 알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었다. 시리우스도 알기 때문에 부득불 노력해서 매년 한마디씩 축하의 말을 건네줬고, 대부분 마법 주문보다도 더한 힘을 발휘하곤 했다. 첫 키스라거나, 뭐 그런 것들과 관련해서.
웃을 일만 있던 건 아니었지만 함께한 시간에 비례해서 추억도 늘어났다. 추억이 늘어나면 서로에 대해 알 수 있었고, 공유하는 부분이 커졌고, 잠시 헤어졌던 기간도 있었지만 결국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인정했다. 어색하고 부끄러웠던 부분이 점차 녹스는 것만큼-시리우스가 그런 모습이 좀처럼 점에서 리무스는 많이 아쉬웠지만- 부드럽게 웃는 법을 배웠고 감정을 필요할 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단 것을 알았다.
“고맙다고 해줘서 고마워.”
떨어지는 입술을 쫓아 다시 맞닿은 리무스의 입술이 장난스럽게 여운을 남기며 웃었다. 쌓이는 추억이나 기억만큼이나 비례하는 것이 꼭 하나 더 있었다. 함께 있을 때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그랬다.
“……사실 오늘 할 얘기는 아니었지만.”
눈을 맞추며 망설이는 시리우스에게 묘한 기시감을 느낀 리무스가 시선을 떼지 않고 생각을 더듬었다. 망설이는 시리우스의 태도와 표정, 말의 분위기가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동시에 무언가를 직감한 듯이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는 자기 자신의 긴장조차도.
“나랑.”
줄곧 리무스의 손을 놓지 않던 시리우스의 손이 단단하게 리무스의 손바닥을 쥐더니 느슨하게 풀어졌다. 리무스가 두 손의 열기 사이에 놓인 금속의 감각을 눈치 챈 건, 긴장한 시리우스가 침을 한번 꿀꺽 삼켰을 때였다. 아, 맞아. 꼭 이런 적이 있었다. 호그와트를 졸업하던 날, 시리우스가 리무스에게 동거를 제안할 때였다.
“결혼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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