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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2.28 [제레귤] 마지막 이야기

-제레귤이 학창 시절에 사귀었다면, 레귤러스가 살아 남았다면의 가정을 필두로 원작을 해친 설정이 상당수 있습니다.

-멀쩡이 썼는데 화면 출력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ㅠ0ㅠ 나중에 수정합니다...






마지막 이야기

제임스 포터 x 레귤러스 블랙



  오랜만이네요. 많이 변했죠. 당신도, 나도.

  발길을 꺼리던 이곳도 당신 아들 인기에 힘입어 좀 더 사람 사는 곳으로 바뀔 거라고 하더군요. 잘 됐죠. 당신 아들이 영웅이 된 것도, 이곳이 예전처럼 돌아오는 것도. 이곳으로 오는데 십 년은 족히 걸렸어요. 쉽사리 찾아올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당신이 죽었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받아들이고도 남았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이렇게 와서 보니까 좋기만 하네요. 좋아 보여요, 당신. 그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당신 아들을 만났어요. 이젠 정말 영웅이 된 당신의 아들, 해리 제임스 포터는 놀랍게도 내 존재를 눈치 채고 있더군요. 물론 살아있었다는 사실은 모른 것 같았지만. 그는 내가 목숨을 걸고 한 일을 알고 있었어요.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몸으로, 해리 포터는 내게 악수를 청했어요. 그 옆에는 대자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형도 있었죠. 고작 열일곱 살, 해리 포터의 손은 나이에 맞지 않게 거칠고 투박했지만 단단했어요.

  당신이 떠올랐어요. 우습게도 나는 당신의 아들에게서 당신의 모습을 찾고 있었죠. 외모는 많이 닮았더군요. 눈만 빼고요. 눈은 당신이 끝에 사랑했던 그녀를 쏙 빼다 닮았어요악수를 하는 도중, 나는 영웅의 시선을 피하고 말았죠.


  …내 얘기를 해볼까요. 누구에게도 솔직히 토로한 적 없는 그런 얘기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사라져서 살아왔고, 여기까지 도달했는지 그 누구도 몰랐죠. 당신 앞에선 솔직해져 볼게요. 그 옛날, 그럴 기회가 있어도 그러지 못했던 걸 후회하는 만큼.

  당신은 몰랐겠지만 당신의 결혼식에 갔어요. 어두운 시기에도 장식된 꽃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결혼식 앞에 마음이 아파 말을 잃었던 기억이 나요. 아무도 모르게 보고 올 생각이었는데, 리무스 루핀과 마주치고 말았죠.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멋진 두 사람이 축복을 받는 날이었어요. 결혼식에 가기 직전까지 훼방을 놓을까, 조용히 인사만 하고 나올까, 웃으며 축복을 해줄까, 온갖 고민을 했지만 막상 먼발치에서만 보는 것이 고작이었어요. 내게 사랑한다 말해주던 그 목소리로 그녀에게, 내게 입 맞추던 그 입술로 그녀에게 당신은 사랑을 맹세하고 있었기에.

  항상 그랬지만, 당신의 행복을 빌어 줄만큼의 대인배는 되지 못하겠더군요. 기절 마법이라도 시원하게 날려주고 싶었지만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오는 것밖엔 도리가 없었어요. 빌어먹을.

  어디까지 얘기했죠? 그 뒤론 별다른 일이 없었어요. 어둠의 마왕은 나를 자신의 옆에 두기를 좋아했어요. 레스트랭과 결혼한 벨라 누나나, 바티 크라우치 주니어, 혹은 나. 하나 더 있네요. 한 마리라고 해야 하나. 그 자의 뱀이요.

  당신이 내게 손가락질하며 욕해도 뭐라 해줄 말이 없네요. 후회는 하지 않아요. 나도 내 가족을 지켜야 했어요. 형이 불사조 기사단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본보기로 내가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내 부모님 앞에서 그분들의 몫까지 견뎠던 사실은 몰랐잖아요.

  하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일은 아니었어요. 어둠의 마왕이 옳지 않다는 걸 내가 알 수 있게 해준 건, 내가 태양과 같은 당신의 길을 훔쳐본 건 다 당신이 알려준 거잖아요. 당신을 미워하고 싶었지만, 결국 미워할 수 없었던 거예요.

  아무튼 그 때, 나를 고문할 때 말이에요, 그자는 많은 말을 했어요. 솔직히 학창시절 형이나 당신의 자신감에 차있는 자기 자랑보다 더 나은 것도 없는 말들이었죠. 하지만 중요한, 아주 중요한 정보를 담은 말들이기도 했어요당신은 항상 내가 읽는 책들을 평가절하 했지만, 이 대목에선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어둠의 마왕은 자신만큼 똑똑한 마법사는 없을 거라고 강조했어요글쎄요. 나는 그자처럼 어마어마한 일은 하지 못해도, 어쨌든 나는 그자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어둠의 마왕이 원하는 것이 불로불사라는 것도, 또 호크룩스를 만들었다는 것도 알아냈어요. 정확히 어떤 물건인지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알았지만구체적인건 생략해야겠어요. 아직도 그때 기억을 생각하면 발을 땅 속으로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어서요. 알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물에 빠지는 건 싫어하는 거.

  중요한건 나는 어둠의 마왕의 호크룩스를 바꿔치기 하는데 성공했고, 크리쳐에게 뒷일을 맡긴 채 익사할 뻔했다가 살아남았다는 거죠. . 나는 살아남았어요. 내가 죽었을 거라 기억한 사람들의 믿음과, 나 자신의 바람과도 반대로.

  죽기 직전의 나를 크리쳐가 데려다 준 곳은 그리몰드 광장이었어요. 놀란 내가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지만, 막상 갈 곳이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어떤 이유든 간에 더이상 내가 갈 곳이 없구나. 막막한 심정이 날 땅 속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죠명령을 기다리며 안절부절 못하는 크리쳐에게 겨우 말해준 곳은, 호그와트였어요유일하게 진심으로 행복했던 곳이죠. 호그와트그곳에서 만난 건 알버스 덤블도어였어요. 예상치 못했을 방문객에게도 그는 흔쾌히 자신의 사무실 한쪽을 내주었죠. 내가 올 것을 알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어요. 내가 묻고 싶은 것도, 덤블도어가 내게 묻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요.

  발작이 일어났어요. 죽는 것이 나았을 거라 생각될 정도의 무시무시한 고통이었어요. 동굴에서 쏟아 부은 마법 약의 후유증이었죠. 환상보다 좀 더 직접적인 고통이 전신을 찔러대 비명을 질렀던 것도 같아요. 아마 질렀을 걸요? 기억을 못해서 그렇지.

  한참동안 바닥에 처박은 내 머리를 잡아 든 건 덤블도어가 아닌 세베루스 스네이프였어요. 어둠의 마왕의 측근인 그가 왜 호그와트 교장실에 있는지, 그가 내 입 안에 억지로 흘려 넣는 약이 무엇인지 물을 틈은 없었죠데스이터인 나를 죽이기 위한 덤블도어의 명령인 줄 알았는데, 썰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고통이 몸에서 빠져나가더군요. 겨우 몸을 추스른 내게 덤블도어는 퍽 다정하게 질문을 해왔어요. 그의 눈엔 호그와트 학생이던 레귤러스 블랙이 보이는 게 아닐까 싶었죠.

  긴 대화 끝에 그는 나의 안전을 보장하기로 했고, 나는 그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했어요. 어둠의 마왕이 해온 일들과 내가 알아낸 것들을 전부 말해주었죠. 더 이상 나는 어둠의 마왕의 충실하고 똑똑한 부하가 아닌, 목숨만을 부지한 완벽한 배신자였으니까요.

  1년이 안 되는 시간을 호그와트에 숨어 있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호그와트는 숨어 지낼만한 장소가 제법 되잖아요? 특히 7층 복도 끝의 방말이에요. 덤블도어 교수님도 알고 있더군요. 그 곳에서 지내면서 여러 소식을 들었어요크리쳐에게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과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그 곳에서였어요.

  그리고 호그와트를 떠나게 만든, 당신의 소식도. 그곳에서 들었죠.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어요. 덤블도어에게 빌린 투명망토를 쓰고 지나온 복도는 온통 할로윈 분위기라 그 날이 할로윈이란 것도 알 수 있었죠. 연회장도 시끄러웠고요. 우리의 학창시절이 많이 떠올랐어요시간은 몇 년이나 흐르고 우리도 그만큼 변했는데 추억이 머무른 곳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더군요. 장면 안에 고스란히 우리의 모습을 그려 넣을 수 있을 정도로요한때는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게 고통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땐 그랬지, 하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정도가 됐어요. 좀 어른이 된 것 같나요? 웃는 걸 보니 그런… 그렇다는 거죠? 좀 쑥스럽네하지만 이제부터 할 얘기엔 웃지 못 할 거예요.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그 소식을 호그와트 7층 복도 끝 방에서 들었어요. 매번 모습을 바꾸는 그 방은 내가 머무를 땐 주로 슬리데린의 기숙사 방과 비슷한 디자인을 하고 있었어요. 그것도 내 마음이 반영된 거겠죠집요정들이 갖다 준 할로윈 요리를 먹으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덤블도어가 찾아왔어요당신의 죽음과 함께, 찾아왔어요.


  당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머리로 생각할 틈도 없이 눈물이 먼저 떨어졌어요지금 생각하면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 같아요. 다들 가족과 친구들의 안전을 염려하던 시대였으니까요. 나는 당신의 안전을 걱정할만한 위치조차 갖지 못했지만, 그래요. 내가 마음대로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내 입으로 설명하기 꼴사납고 쪽팔리지만 정말 많이 울었어요. 가슴이 떨어져나갈 듯 붙잡고 울었어요. 당신의 죽음으로 세계가 살아남았다는데, 나는 세계가 멸망한 것보다 더 절망을 느꼈어요내 세계가 당신의 삶으로 세워졌는데, 당신이 없는 세계가 구원받은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호그와트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어요. 엉망이 된 얼굴을 제대로 가리지도 않고 필요의 방을 나와,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내려와 호그와트 성을 나왔어요. 투명망토는 챙길 겨를도 없었죠. 그렇게 나는, 호그와트에서 당신과 두 번째 이별을 했어요.

  사실 그 후로 얼마 못가서 덤블도어에게 붙잡혀 그의 교장실로 돌아왔어요. 그렇게 웃지 말아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해도 막무가내였어요. 갈 곳이 있냐는 말에도 답할 길이 없었구요.

  교장실에서 만난 사람은 세베루스 스네이프였어요. 그도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닫기도 전에 그는 덤블도어에게 화를 냈어요. 릴리 에반스, 아니 릴리 포터를 지켜주기로 한 게 아니었냐면서.

  그때 대부분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어요. 이상하죠. 분명 마법사들은 곳곳에서 분별없는 축제를 즐길 정도로 기쁜 날이었는데 내가 들은 얘기들은 온통 절망뿐이었어요. 포터 부부의 죽음, 시리우스 블랙의 배신, 페티그루의 죽음 같은 것들.

  세베루스 스네이프의 얼굴은 엉망이었어요. 그걸 보고 깨달았죠. 그가 학창 시절 누구와 친했는지, 그와 내 처지가 같다는 것도요. 해리 포터의 생존 앞에,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그를 지키겠노라 덤블도어에게 맹세했어요다음은 나였어요. 스네이프는 아마 내가 자신처럼, 어느 특공대마냥 덤블도어의 임무를 받아 떠날 것처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았죠.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이미 너무 지쳐있었어요.

  세베루스 스네이프는 해리 포터에게 그 여자의 모습을 찾았을지 몰라도 난 아니었어요. 당신의 아들이 100% 당신의 외모와 성격까지 빼다 박았다 해도, 난 그를 위해 살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의 아들은 결코 당신이 아니니까요.

덤블도어는 내 뜻을 존중해주었죠. 스네이프는 모르는 충분한 정보를 이미 전달하기도 했으니까, 그 공을 높게 산 걸지도 몰라요. 그는 나와 스네이프에게 은신처를 제공했어요. 호그와트와는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집이었죠사실 스네이프에게 그런 곳은 필요하지 않았을 텐데, 덤블도어는 굳이 두 사람에게라는 표현을 썼어요. 왜 그랬을까요.

  평화로웠어요. 다른 사람과의 교류는 없었고, 그나마 같이 산다고 할 수 있는 스네이프는 잘 오지도 않았어요. 단출하다 못해 초라한 오두막이었죠. 마법사가 만들었다고 보는 것보다 내부가 크긴 했지만, 그래도 썩 훌륭한 곳은 아니었어요여름인데도 밤에는 서늘한 한기가 느껴질 정도의 숲속이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의 소리도 자주 들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며칠 동안은 내 손으로 불을 켜거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어요.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죠.


  차라리 그 호수에 가라앉아 죽길 바랐어요. 난 왜 숨 쉬고 있는 걸까. 왜 여기 앉아 있는 걸까. . 어째서. 의미 없는 물음이 아프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맴돌았어요. 우습죠. 우리가 이별한지는 이미 한참이 지난 후였는데, 당신은 결혼까지 했는데, 난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오두막에서 정말 당신이 없다는 사실을 실감했어요.

  그거 아나요? 당신이 없는 이 세상엔 꼭 당신만큼의 공기가 없어서 숨이 막히고, 당신만큼의 무게가 없어서 걷는 것조차 어려워요. 당신의 죽음을 내 눈으로 목격한 것도 아닌데 나는 온몸으로 깨달았죠. , 당신은 이미 이 하늘 아래에 없구나당신이 살아있음으로 남아있을 소리가, 색채가, 모든 의미 있는 것들이 사라진 세상은 온통 흑색이었어요. 내가 밟고 있는 이 땅 어딘가에 당신이 묻혀있구나, 생각 했을 땐 내 발목을 잘라버리고 싶었어요. 내가 얼마나 죽고 싶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나요?

  하…. , 젠장. 물 흘렸네.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쉬었고, 닳을 정도로 당신의 이름을 입술로 매만졌어요. 그렇게 부르면 당신이 돌아올까 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으면서 돌아오기라도 할까 봐그 옛날처럼, 장난치기 좋아하던 얼굴로 전부 연극이었다고, 땅속은 시원하고 좋더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농담으로 내 심장을 기워주길 바랐어요. 하지만 그때도 알았고, 지금도 알아요. 그런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내가 당신을 내 심장에서 놓아 버리는 것만큼이나.

  절정에 달한 건 자살 시도였어요.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하나도 안 무서워요. 어쨌든 그런 시도는 자의든 타의든 간에 전부 실패했고, 급기야 세베루스 스네이프에게 지팡이를 압수 당하기까지 했어요. 지금 생각하니 굴욕이네요.

그 후에도 몇 번 시도했지만. 어쨌든 약간의 상처를 갖고 난 여기 살아있죠. 지금 화내고 있나요? 당신, 그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군요. 화를 내는 건지, 슬퍼하는 건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아요. 말이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시간이란 게 어떤 고통보다도 독하고 잔인하더군요. 슬픔에 몸부림치는 데 지쳐 멍하니 창밖을 보는 날이 많아지고, 시도 때도 없이 흐르던 눈물이 말라갈 쯤엔 스네이프가 나 때문에 오두막에 들락거리는 일이 잦아졌다는 걸 깨달았어요. 창피한 일이죠.

  어쨌든 내 감정 밖의 상황도 돌아볼 여유가 생긴 거예요. 시간은 약이 아니라 감정의 그릇을 넓혀주는 게 아닐까 해요. 고통은 전혀 덜어지지 않지만,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지는 거죠나는 스네이프에게 이곳을 나가겠노라고 했어요. 그는 군말 없이 내 지팡이를 돌려주었죠. 덤블도어에겐 자리를 잡으면 부엉이를 보내겠다고 했어요.

당신의 흔적이 남은 세계와 멀리 떨어졌으면 했죠. 그런 마음으로 절실하게 내가 도착한 곳은, 어느 외진 머글 마을이었어요.

 

  머글에 대해선 멀린의 콧수염만큼도 모르던 내가 머글 마을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건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었죠. 내가 죽다 살아난 것보다 더한 혁명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죽으려다가 죽지도 못했으니, 뭐든 못할 게 있을까 싶은 심정이었죠. 크리쳐의 도움 덕에 그린고트에 있던 내 앞의 돈으로 머글 돈을 마련해 살았어요.

  적응하느라 고생 했어요. 돈 세는 것도 쉽지 않았고, 처음 보는 것들이 뭔지 주변에 묻지 않고 알아내느라 진땀을 뺐죠. 처음 몇 달은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낯선 환경에 있느라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어요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머글 연구 과목이라도 들어 둘걸, 실없는 후회를 하면서 집안에 있는 물건부터 이것저것 알아보고, 필요한 건 마법도 걸어두었죠. 문제는 밖에서였어요. 가게에 있는 물건들이 전부다 얌전히 제자리에 있는 광경은 꽤 심심하더군요마법사라는 걸 들키는 게 아닐까 했지만 괜한 걱정이었어요. 머글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더군요. 길 가던 사람이 자리에 멈춰서 눈물지어도 말 거는 사람 한명 없을 정도로

  슬슬 적응을 하려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백이 밀려오더군요. 숲의 오두막에서 느꼈던 그 감정이 싸늘하게 심장을 파고드는 걸 느낀 나는 화들짝 놀라 할 일을 찾기 시작했어요. 맞아요. 난 머글 세계에서 일을 했어요먹고 사는데 필요한 돈은 급하지 않았어요. 내 돈도 돈이지만, 오지랖 넓은 덤블도어가 잊을만하면 충분한 자금을 보태주곤 했거든요. 그것도 머글돈으로, 머글식 유머가 담긴 편지와 함께요. 당신이 말한 대로 정말 유쾌하게 미친 노인네예요.

  금전적인 문제보다 심적인 문제가 급했어요. 내 마음에 조금도 여유를 줄 수가 없었죠. 더 이상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도 아니었고, 남의 이상이나 바람을 충족해주기 위해 더러운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었죠목적이 없었고, 의무도 없었어요. 그 무엇도 날 옭아매지 않았지만 평생을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지내다보니 오히려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내 목을 조르고 마음을 때리더군요. 그래서 그렇게 아팠나 봐요

  쉽게 구할 수 있던 일은 동네 마트에서 일을 하는 거였어요. 적당히 위조한 이력서를 들고 가면 쉽게 일자리를 내주더군요. 주로 내가 맡은 일은 캐셔였어요. 계산대에 서서 포스-머글들이 계산을 빠르게 하기 위해 만든 기계예요.-를 다루었죠내 손으로 머글의 돈을 만지고, 물건을 세고, 때론 맨 손으로 물건들을 직접 정리했죠. 정말 번거롭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시간은 잘 가더군요. 남에게 이것저것 명령받는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어요.

  또 기계를 다루는 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지팡이 한번 휘두르면 다 될 일을 뭐가 그렇게 버튼을 눌러야 하는지. 알다시피 나는 뭔가 실패하는 걸 싫어해서, 오기가 생겨서 더 열심히 배우기도 했구요번거로운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살았던 지난 도련님으로서의 날들 덕에, 뜻처럼 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다 할 수 있게 되더군요. 밖으로 나갈 때 지팡이를 안주머니에 숨기고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였어요. 문제는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했지만.

  외운 대로 물건을 정리하려 커다란 카트-물건을 옮기기 위해 쓰는 머글들의 바퀴달린 수단이에요-를 밀고 한산한 매장을 누비고 다녔어요. 힘을 쓰고 물건을 옮기는 게 영 힘들었는데 몇 번 해보니까 체력도 기르고 요령도 생기더라고요호그와트 학년 수석이 죽지 않았는지 어떤 물건이 어느 구역인지 바로바로 찾아갈 수 있었어요. 과자는 계산대에서 가까운 중간 구역, 생필품은 가장 먼 가장자리 구역, 뭐 이런 것들이요. 이제 좀 적응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빈 카트를 보는데 갑자기.

  갑자기. 거짓말처럼 눈앞이 흐려지는 거예요. 졸린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어요. 그럴 기미도 없었는데, 나는 선반들 사이에 서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어요.

  정신없이 흩어놓은 낯선 일상들로 당신을 가려두었는데, 그것들을 정리하니 다시 당신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숨겨두면 먼지가 쌓이고 빛이 바래서 괜찮아 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어요. 안일했죠. 당신에 대한 감정은 내버려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는데.

  결국 나는 여러 일을 전전했어요. 일에 익숙해질라치면 그만두었죠. 머글들이 요구하는 특별한 기술을 익힌 적도 없고 명확한 신분도 없어서 직장을 갖기는 어려웠죠. 오히려 그런 면에서 유동적인 일이 좋긴 했지만

  운 좋게 출판사에서도 일을 해봤고, 또 머글 도서관에서는 마지막까지 일했어요. 아직도 그곳으로 간다면 날 기억할 사람이 있을 정도로 오래 했죠. 그게 가능했던 건 많은 양의 책 덕분일 거예요읽으려는 사람의 손을 물려고 한다던가, 하는 악취미적인 마법 책을 제외한다면 책만큼은 머글과 크게 다를 점이 없었어요. 많은 정보를 전달해주고, 대가로 감정에 할애할 내 시간을 가져가죠. 내가 모르는 머글의 지식을 알아가는데도 한 몫 했고요.

  그 날도 한참 도서관에서 일을 하던 시기였죠. 아주 평범한 일상이었어요. 특별하게 소식을 나누는 사람은 없었어요. 아주 드물게 부엉이를 통해 세베루스와 편지를 주고받곤 했지만, 그는 그런 부분에선 성실한 사람이 아니니까요당신은 그와 사이가 안 좋았죠. 당신도 이해하지만, 무조건 편 들어줄 수 없겠네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에게도 사정이 있었으니까요. 어쩌면 그래서 더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판단은 내 몫이 아니죠.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 그래요. 하루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어요. 근처 마트에 들러서 간단한 먹거리를 사들고 집에 걸어가려니 꽤 늦은 시간이었어요. 추운 겨울날이라 해도 빨리 저물어 길은 벌써 어둑했죠.

마트까지 들러서 무거운 짐까지 들고 가려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어서, 인적 드문 골목으로 빠져서 순간이동을 쓸 생각이었어요. 머글 세계에 적응했다고 해도 그들의 불편한 점을 감수할 정도까진 아니었거든요.

  지팡이를 꺼내는 것까진 좋았는데 갑자기 골목 안으로 누군가 급하게 들어와서 마법을 쓰지는 못했어요. 겨우 바지 뒷주머니에 찔러서 지팡이를 숨기니 좁은 골목 안, 내 앞엔 머리만큼이나 숨을 흐트러트린 여자가 있었죠그녀도 나만큼이나 놀란 모양인지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더군요. 그것도 잠시, 그녀를 쫓아온 건장한 두 남자들에 놀라 그녀는 내 뒤로 숨어버렸어요. 아마 막다른 골목만 아니었다면 그대로 뛰어갔을 거예요.

  한숨이 절로 나오더군요. 이건 무슨 상황인가. 두 남자는 내가 보이지도 않는지 여자보고 얼른 가자고 으르렁댔죠. , 그래요. 사실 이들이 몬스터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입 냄새가 지독했거든요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냥 그대로 골목을 빠져나와 순간이동을 할 만한 다른 곳으로… 농담이에요. 그렇게 심각하게 보지 말아요. 최대한 정중하게 물었어요. 무슨 일입니까? 하고요.

  남자들도 잔뜩 악에 받친 모양인지 당신은 상관없으니 빠지라더군요. 머글 격언 중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 있는 거 알아요? 간과하면서 살았지만, 그 순간은 그 말이 떠올랐어요.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당신을 떠올린 그 순간부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요? 처음엔 최대한 말로 설득하려 했어요. 내가 자신을 보호해줄 것 같았는지 여자가 내 셔츠 자락을 붙잡는 것이 느껴졌어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남자들은 별로 논리적인 설명을 하지 못했죠. 남자들의 덩치나 여자의 옷차림새, 주변 시내 환경을 생각하면 별로 눈치 채지 못할 상황은 아니었어요. 해결할 문제가 있다면 경찰에 가는 게 좋지 않을까요경찰 얘기를 꺼내니 남자들은 날 이제 여자와 한패로 생각하더군요. 그녀가 갚을 돈이 있다고 얘기 했어요. 갚는 거야 뭐, 뻔하지만 몸으로 갚는 거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좀 가련했어요. 무슨 뒷사정이 있는 건진 모르는 주제에. 망할 오지랖.

  그녀의 머리는 붉었어요. 그 붉음에 충동질 당한 내가 그녀에게 물었어요. 내가 당신을 여기서 도와준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비밀을 지켜줄 자신이 있나요? 그녀는 절박하게 고개를 끄덕였죠. 나는 그녀의 포근한 갈색 눈을 믿었어요.

기본 안전 수칙을 무시한 채 뒷주머니에 꽂아둔 지팡이를 꺼내고 자신들을 무시한 대화에 격분한 남자들에게 겨누었어요. 기억력 마법 같은 고난이도 마법은 오랜만이었지만 다행히 성공이었죠정신을 잃고 쓰러진 두 머글 남자를 냅두고 여자를 보니 여자도 나를 보고 있었어요. 그때 깨달았는데, 자꾸만 여러 번 눈이 마주쳤더라고요.


  -비밀로 해줄 수 있죠? 그게 아니라면 당신의 기억도 지울 수 있어요.


  말하고 나니 아차 싶더군요. 별로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공격적으로 들렸을까 싶어서요. 하지만 그녀는 용감하게 고개를 저었죠. 솔직히 아무데나 가서 말해도 나는 몰랐겠지만, 드물게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마워요. 당신 같은 일반인 앞에선 쓰면 안 되는 거라.

  -물어봐도 안 되나요?


  잘못 들은 건가 했지만 아니었어요. 그녀는 똑똑한 목소리로 내게 묻고 있었어요.

  그게 그녀와의 첫 만남이었어요. 그녀가 누군지 궁금한가요? 좋은 친구였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내 덕에 부엉이에게 편지를 쓰게 된 게 아주 기분 좋다고 하더군요. 꼭 자신도 마녀가 된 것 같다면서왜 웃어요? 실망스럽나요? 당신도 알잖아요. 내가 평생에 걸쳐 사랑한 사람은 딱 한 명뿐이라는 거. , 맞아요. 당신 찔리라고 하는 말이에요.


  마법부는 여전히 사람을 귀찮게 하네요. 형이나 나의 불명예를 없애기 위해 내가 전면에 나서주길 바랐지만 거절했어요. 형이야 당신의 아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해줄 것 같았고, 나는. 글쎄요.

  남들이 날 순수혈통의 희생자로 기억하든, 가해자로 기억하든, 혹은 숨겨진 영웅-날 설득하려는 사람들이 다 이 말을 하더군요. 웃기죠?-으로 생각하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요. 어차피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기억되는 건 똑같으니.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 그 여자요. 특별히 복잡한 사정도, 그렇다고 쉬운 사정을 갖고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냥 유흥가에서 일하는 여자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그런 사정이었죠그렇다고 그녀의 고통을 평가절하 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그녀를 도와주지도 않았겠죠. 한명이나마 남은 그녀의 가족을 만나게 해주고, 일자리를 소개해준 것도 나였으니까요. 놀랄지도 모르지만 이 과정에서 마법은 쓰지 않았어요.

  그녀는 성실하고 정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내가 소개해준 일자리에서도 칭찬 받을 정도로 열심이었어요. 여자 혼자 먹고 사는데 좀 걸렸지만, 열심이었죠.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그녀는 절대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기름진 튀김을 씹었어요. 그녀는 좋은 친구였어요. 그녀는 몇 년간 내 집에 머물렀어요. 내가 먼저 제안했죠. 그녀는 당연히, 의심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내 성적 취향으로 걱정을 일축해주었죠.

게이니까 걱정 말아요. 처음 그 말을 들은 여자는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왁자하게 웃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웃긴 말인가. 누군가에겐 엄청난 커밍아웃인데 웃기 바쁜 그녀에게 눈살을 살짝 찌푸리니 금방 미안하다며 사과하더군요.

  여자들이 아까워하겠다거나, 그런 말을 하면서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웃음 섞인 말을 했어요. 내가 대화상대로 적절한 사람은 아닌데 잘도 얘기하더군요. 그녀와 지내는 몇 달간은 집에 제법 활기가 돌았어요아침을 준비해주는 사람이 있었고, 서로 일을 나가고 가끔 시간 맞으면 외식도 하고. 남들이 보면 완전히 동거하는 커플이더군요. 그녀는 남들에게 넉살스럽게 그렇다고 얘기하고 다니기도 했고요. 굳이 그걸 말리진 않았어요. 우리는 좋은 친구였으니까.

  자유로운 그녀는 나와 같이 지내는 것도 개의치 않고 때론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했어요. 물론 내가 간섭할 부분은 전혀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녀의 남자친구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이었어요. 남매라기엔 지나치게 외모가 달랐으니까요받아들이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더군요. 날 제 친구처럼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남자친구도 있었고, 나 때문에 크게 싸움을 벌인 남자친구도 있었죠. 그럴 때마다 그녀는 언제나, 남자친구 쪽을 포기했어요. 정말 정에 약한 여자예요.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가 스물다섯 살쯤이니, 그녀와 지낸 것도 7년에 가까웠네요. 그녀에게 조금씩 내 얘기를 해줬어요. 7년 동안 조금씩이라 해도 모아놓으면 책 한권을 쓸 정도는 되겠지만일단 마법세계에 대해서만 말해도 엄청나잖아요? 그녀는 동화책을 듣는 어린애마냥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얘기를 들었어요. 때때로 질문도 했죠. 대부분 머글들의 환상에서 비롯된 터무니없는 질문들이었지만 싫진 않았어요.

  다이애건 앨리와 호그스미드, 호그와트와 마법부. 어떻게 머글들의 눈을 피해서 지내고 있는지가 주가 됐어요. 그러고 보니 이거. 알려지면 나 아즈카반으로 끌려가겠는데요? 하하.

  그녀는 내 학창시절 이야기를 가장 좋아했어요. 가장 자신의 생활과 비교하기 적절하다나 뭐라나. 솔직히 내 입장에선 그리 달가운 주제는 아니었어요. 내 마음과는 별개로 그녀의 질문은 점점 내 안으로 파고들었죠게이인 건 어떻게 알았어? 연애했어? 적당히 거짓말로 둘러도 좋을 질문이었는데 차마 거짓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 어떤 사람이었어? 턱을 괴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내게,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냐고 묻는, 붉은 머리와, 갈색 눈동자의 그녀.

  …침착한 그녀는 놀라지도 않고 나를 안고 달래주었어요. 자신이 미안하다며. 그녀가 미안할 게 어디 있겠어요. 그녀가 그렇게 태어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궁금하면 물어볼 수도 있는 거죠그 날 이후로 그녀는 내 연애 사정에 대해선 꽤 조심하기 시작했어요. 넘치는 호기심을 자제하는 건 어려워보였지만 그 태도만으로도 고마웠죠.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때에도 당신을 완전히 묻어버리지 못했다는 걸 알았어요. 당신은 한구석에 밀쳐놓을 순 있지만 손가락으로 툭 건드리기만 해도 터져버릴 것처럼 부어오른 상처였어요. 아파서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그래도 그녀는, 뭐랄까,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녀를 보면 당신 생각을 하게 되면서도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이런 표현이 이상하지만 정말 그랬어요.

  그녀는 내 기울어진 인생을 지지해주었어요. 동시에 문득문득 당신을 생각하게 하는 외모와 행동과 성격이, ,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었어요. 이대로 그녀와 평생을 살아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하게 할 만큼하지만, 어느날 내 앞으로 온 한통의 편지가 날 움직였죠. ――그가 돌아올 것이다. 해리 포터가 위험하다.


  1994년 초여름. 그녀에게 종종 편지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는 그녀와 지내던 머글 세계를 떠나 다이애건 앨리로 향했어요. 12년만에, 나는 내가 속한 곳으로 돌아왔어요.  당장이라도 사람이 죽어나갈 것 같은 소식에 비해 마법사들의 마을은 퍽 평화롭더군요. 그자가 아직 돌아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지만요.

  덤블도어를 찾아가기 전에 다이애건 앨리와 호그스미드를 둘러보았어요. 사람이 많았고 방학중인 탓인지 호그와트 학생들도 더러 보였죠. 그리고 그리몰드 12번지에도 갔어요죽은 집이었어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형은 누명을 쓰고 아즈카반에 있었으니 알만했죠. 원래 분위기가 침침하긴 하지만, 정말 사람이 없는 집과는 비교할 순 없죠.

  조용히 올라간 내 방은, 그래도 상상과는 다르게 깨끗했어요. 죽음을 결심하고 방을 깨끗하게 치우고 나온 그날, 그 모습 그대로였어요. 흘러가버린 시간을 망연히 실감하고 있을 때 뒤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어요깜짝 놀라 돌아봤는데 덩달아 그쪽도 놀란 모양이었어요. 금방 나는, 놀랄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크리쳐가 그곳에 있었어요. 굽은 등을 힘들게 세워서 놀란 눈을 한 그는 못 믿겠다는 듯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죠.

  크리쳐의 울음은, 다시 한 번 나를 현실에 붙잡아두는 멍에와 같았어요. 동시에 내가 정말 살아있음을 깨닫게 만드는 현실 그 자체였죠. 누군가 살아 있는 나를 보고 알아봐주는구나.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 맞구나. 새삼스럽게 깨달은 거예요.

  크리쳐를 진정시키고 나에 대한 정보를 발설하지 말라고 명령했어요. 블랙 가문에 남아있는 사람 중에 그에게 가장 높은 명령권을 쥐고 있는 건 나니까 가능했어요. 형이 있긴 하지만, , 형이 크리쳐에게 설마 나에 대한 일을 물을 일은 내가 두 번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는 것보다 더 희박한 확률이니까요.

  방학 중인 호그와트는 한산했어요. 교장실에서 만난 사람은 덤블도어와 스네이프, 두 사람이었어요. 단편적으로 듣기만 했던 그간의 일들을 덤블도어에게서 주로 들었죠. 주로 당신의 아들에 대한 일이었어요. 얼마 전에 아즈카반에서 탈출한 형의 소식도 있었고.

  해리 포터는 돌아오는 새학기에 4학년이 될 것이었고, 새로운 어둠의 마법 방어술 교수로는 매드아이 무디가 될 것이다. 그런 얘기도 들었어요. 솔직히 내가 그런 얘기를 들어서 뭐하라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솔직하게 덤블도어에게 물었죠.

  그는, 그저 들어두기만 하라고 했어요. 나는 예나 지금이나 당신들 편에 서서 어둠의 마왕을 막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그는 나에게, 그래도 자신의 편지를 받고 돌아온 것은 내 선택이지 않느냐고 말했어요. 정말, 그랬죠. 다시 생각해보면 뭐하자고 돌아왔는지 모르겠더군요. 말뚝에 매인 가축처럼 호그와트 주변을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호그스미드에서 지냈어요. 덤블도어의 동생인 애버포스와 아주 우연히 만나서 그의 집에서 생활했어요.

  애버포스와 나는 서로 아주 많은 말을 나눴죠. 거칠고 무뚝뚝한 사람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더군요. 옛날 얘기를 듣듯, 나는 어디서 쉽게 듣지 못한 덤블도어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도 그 대가로 내 얘기를 많이 들었고요머글 세계에 있는 것보단 확실히 소식이 빨랐어요. 마법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매드아이가 어떤 사고를 일으켰는지, 마법사 세계에 어떤 소문이 도는지. 방에 앉아 창문을 열어놓기만 해도 훤했죠. 예언자 일보도 한몫했지만, 전부를 믿진 않았어요.

  그리고 호그와트의 새 학기 시즌이 돌아왔죠. 미리 알고 있었지만, 호그와트에서 오랜만에 트리위저드 시합이 열렸 죠. 그리고 당신의 아들,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해리 포터는 네번째 챔피언 후보로 그 시합에 참가했어요그 모습을 본다면 당신은 분명 즐거워서 입을 다물지 못했을 거예요. 해리 포터가 어떤 비열한 수법을 썼다 한들 잘했다고 등을 두드려 준다에 전재산을 걸 수도 있어요. 내 말이 틀렸나요? 지금도 벌써 웃고 있는 것 같은데.

  사진 이외의 해리 포터를 직접 본건 199411월이었어요. 트리위저드의 첫 번째 시합이 있는 날이었죠. 많은 관중 속에 살짝 껴서 관람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어요. 그는 헝가리 혼테일을 상대로 황금알을 획득해야했죠. 좀 미친 것 같지 않나요?

  당신 아들은 그것보다 더 미친 것 같았어요. 단 한 번의 마법으로 그는 자신의 빗자루를 소환해 공중으로 날아올랐어요. 믿겨지나요? 그래요. 거기에 있는 건 정말 당신의 아들이었어요. 아주 잘 날더군요. 과연 퀴디치의 포터, 피는 못 속여요듣자하니 수색꾼이라던데, 내가 보기에도 훌륭하던데요. 당신보다 조금 작은 키에 날렵한 몸매, 빗자루 조종도 정교했어요. 타고났다고 밖에 말을 못하겠더군요. 당신이 수색꾼을 계속 했으면 저랬을까 싶을 정도로.

  결과적으로 그는 훌륭하게 알을 차지했고 다음 경쟁에 참여할 권리를 얻었어요. 개인적으론 앞선 다른 챔피언들보다 훨씬 훌륭하고 인상적인 방법이었죠. 심판들은 저마다의 기준이 있을 테니 점수는 그렇지 못했지만.

  덤블도어는 바쁜 와중에도 나를 종종 만나는 것을 잊지 않았어요. 그는 끊임없이 내게 해리 포터에 대한 것을 전했고 그가 당신과 많이 닮았다는 걸 얘기했죠. 당연히 수긍했어요. 닮은 건 사실이니까. 당신은 아니지만.

  남은 트리위저드 시합을 전부 관람 했어요. 물속에서 진행한 시합은 기다리기 지루했지만 그럭저럭 볼만했어요. 영웅 해리 포터는 다른 친구들이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걸 그냥 두고 보지 못했죠. 친구 끔찍하게 여기는 것도 참, 누구 닮았던데.

  그리고 그 날 밤. 마지막 시합이 있던 날. 어둠의 마왕이 돌아온 날. 젊은 학생 하나가 그자의 손에 죽었고, 한 해 동안 해리 포터를 위협하던 모든 사건들은 아즈카반에서 빠져나온 바티 크라우치 주니어의 치밀한 소행으로 밝혀졌어요.

  바티 크라우치 주니어. 참 낡은 이름이에요. 학교도 같이 다녔고, 나보다 한 학년 아래였죠. 당신이나 형을 봐온 내 기준에서도 참 미친놈이었고, 데스이터 시절에도 그자에 대한 광기를 견주자면 벨라트릭스 누나 정도만 가능할 것 같았죠.

  그가 모든 것을 고백하고 디멘터의 키스를 받기 직전, 그와 눈이 마주쳤어요. 나는 내 모습이 아니긴했지만, 그가 나를 알아봤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웃었거든요, 소름끼치게. 그가 받은 디멘터의 키스보다 더.

 

  그가 부활한 후의 마법 세계는 아주 볼만하더군요. 사실을 주장하는 어린 영웅을 언론과 마법부가 매일같이 공격했어요. 또 덤블도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비아냥거림을 받는 건 생전 처음 봤어요. 멍청하기 짝이 없는 희극이었죠.

  나는 그 상황을 관망했어요. 여전히 애버포스의 집에 머물고 있었고, 그의 집에는 호그와트로 통하는 길이 있었어요. 진실과 거짓의 경계라고 멋들어지게 표현해둘게요. 5학년이 된 해리포터는 그 통로의 끝에 있는 필요의 방에서 진실을 끝없이 상기했으니까호그스 해드에서 다소 어설픈 리더의 면모를 보여준 당신의 아들은 어둠의 마법 방어술을 연마하도록 친구들을 도와주었어요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어떤 걸 연습하고 그들이 그들의 모임에 어떤 이름을 달았는지 정도는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죠. 덤블도어의 군대라, 마루더즈에 버금가는 센스 아닌가요?

  그렇고 그런 나날들이 지나갔어요. 내가 끼어들 곳은 없었죠.

  그러던 중 당신의 아들이 또 무언가 해냈더군요. 세상은 자신들이 외면했던 해리 포터의 싸움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볼드모트가 돌아온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동시에 큰 공포에 휩싸였죠.

  미스터리 부서에서 있었던 전투에 대한 자세한 일은 전해지지 않았지만, 볼드모트에 부활이 알려짐과 동시에 형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예언자 일보에서 특종으로 다루었어요.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모양이었지만, 15년간 쓴 살인자의 누명을 벗었죠.

  누구도 해리 포터의 명망을 무시하지 못했지만 그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에 불과했어요. 반면 어둠의 마왕이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쳤고 죽음을 먹는 자들이 공공연히 활동했죠마법사 세계뿐만 아니라 머글들의 문제기도 했어요. 그들의 뉴스엔 수많은 의문사가 보고되었고, 머글 세계에서 만난 그녀는 부엉이 편에 요즘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마법사들과 관련이 있냐고 물었죠. 나는 몸조심 하라는 것 외엔 설명할 수 없었어요.

  많은 일들이 지나갔어요. 대부분 우울한 것들이었죠. 덤블도어 교장이 죽은 호그와트는 죽음을 먹는 자들이 점령했고, 그곳엔 더 이상 해리 포터가 없었어요. 필요의 방을 이용한 나는 호그와트가 더는 가망이 없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아니었죠그 방에 다시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한 거예요. 롱바텀을 필두로 한 많은 학생들이 잔인하게 억압하는 데스이터를 피해 필요의 방으로 숨어들었고 그들 나름대로의 항쟁을 벌였어요. 그들은 방의 존재를 모르니 학생들을 잡을 수 없었죠.

  학생들의 최대 적은 굶주림이었어요. 보다 못한 애버포스가 필요의 방과 자신의 집의 통로를 연결한 이유기도 하죠. 애버포스는 그의 형을 싫어하지만, 결국 그의 형처럼 학생들에게 매정하게 굴지는 못하더군요. 선한 사람이에요음식을 옮기던 몇몇 남학생들을 자주 볼 수 있었어요. 내가 나서서 도와준 건 아니지만, 테이블에 앉아 예언자 일보를 보고 있거나 편지를 쓰고 있으면 심심찮게 오갔죠. 필요의 방에 머무는 학생 수가 점점 많아지니 더 자주 봤을 거예요특별히 무슨 대화를 나누진 않았어요. 그저 시선만 몇 번 마주 했다가 그들은 애버포스가 재촉하면 음식과 함께 통로 안으로 들어갔죠. 신문이나 잡지 덕분에 내 얼굴이 낯이 익었지만, 확신할 수 없었을 거예요.

  세상은 점점 더 어둠의 세력이 좀먹어갔고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은 이들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추었고 서로를 불신했죠. 20년 정도의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불신의 시대.

  혹자는 해리 포터가 도망갔다고 했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았어요. 농담에도 쓰지 못할 말이었죠. 그와 말을 섞은 적도 없고, 먼 거리에서 몇 번 본 게 다지만 그거로도 충분했어요. 당신의 피를 가진 당신의 아들은 결코 도망치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그건 정말이었죠. 5월의 첫날. 호그스미드에서 거의 붙잡힐뻔한 해리 포터 일행을 애버포스가 구해줬어요. 나는 어김없이 내 자리-테이블-에 앉아있었고 뜻밖의, 그러나 예견된 손님들을 쳐다보기만 했어요그들도 나를 보았죠. 나는 처음으로 해리 포터의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어요. 모습은 엉망이던데 눈은 녹빛으로 반짝이더군요. 당신하고는, 글쎄요, 닮긴 했지만 남들이 감탄하는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고요.

  애버포스가 테이블 위에 빵과 우유를 내려놓았고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내려두고 윗층으로 올라갔어요. 그들과 말을 섞을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다행히 그들이 나에게서 형을 연상하는 것보다 애버포스에게서 덤블도어 교장을 떠올리는 것이 더 빨랐어요.

  재회의 기쁨을 누린 해리 포터와 호그와트 학생들이 통로로 사라지는 것을 계단 위에서 지켜보았죠. 초상화를 닫은 애버포스와 눈이 마주치자 내가 그에게 물었어요. 갈거죠? 그는 미친 소리 말라고 했지만 자신의 지팡이를 찾아 주머니에 챙기더군요.

 

  199852. 과연 누가 이 날을 잊을까요. 해리 포터를 찾는 어둠의 마왕의 목소리가 호그스미드까지 울렸고 전쟁이 시작됐어요. 학생들과 교수진, 적은 수의 불사조 기사단은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죠. 나도 그 자리에 있었어요. 망토를 뒤집어 쓴 채 애버포스의 뒤를 따라 호그와트로 들어갔죠. 싸우겠다는 생각으로 간 건 아니었어요. 그냥 내 눈으로 끝까지 보고 싶었어요. 이 싸움이 어떻게 끝날지.

  갈색 머리의 여학생이 펜리 그레이백에게 물릴뻔한 걸 구해주고, 몇몇 학생이 돌더미에 깔릴뻔한 걸 벽을 멈추어 막아주었죠. 그들은 망토를 두른 내가 자신들을 도와줬다는 사실에 얼떨떨해 했지만 금방금방 자리를 떴어요. 그만큼 상황이 급박했으니까요.

  예전부터 늘 마음에 안 들었던 돌로호브의 뒤통수를 쳤고, 나시사 누나가 루시우스 선배와 싸울 의지 없이 아들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았어요. 싸우는 사람도, 주저앉은 사람도, 도망가는 사람도, 슬퍼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특히 전투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많이 죽었죠. 싸움은 잠시 멈추었고 그 사이에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연회장으로 모였죠. 누가 죽었는지 직접 들어 가보진 못했지만, 목소리를 듣자하니 형은 살아있더군요. 그리고.


-해리 포터는 죽었다!

-그는 죽지 않았어! 


  눈물나게 아름답더군요. , ... 당신이라면 그 상황을 뭐라고 정의했을까요. 사랑? 우정? 용기? 정의? 진실? 뭐든 갖다 붙여도 괜찮을 것 같네요. 어떤 기적이 일어났는지는 몰라도 해리 포터는 죽지 않았거든요롱바텀이 루비가 박힌 검으로 뱀의 머리를 내려치고, 크리처가 가짜 로켓을 목에 걸고 집요정을 지휘하는 크리쳐가 있었어요. 깨달았죠. 세상에 남은 호크룩스는 없다는 걸.

  크게 웃고 싶었어요. 남들은 싸우고 있었는데 미친 사람마냥 웃고 싶었죠.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 들었어요. 내가 해내지 못하고 떠돈 시간을 해리 포터는 그 손으로, 자신의 운명으로 움켜잡아 해냈어요어둠의 마왕과 해리 포터가 광기에 찬 대화를 하기도 전에 직감할 수 있었죠. 볼드모트의 패배를.

  전쟁은 끝났어요. 선과 악의 대립이었다면 선의 승리였죠. 볼드모트는 영원히 죽었고 주인을 잃은 자들은 투항하거나 도망갔어요. 사람들은 승리를 축하했고, 떠나보내야 하는 이들을 기렸어요. 전투가 일어났던 한 가운데서 망토를 벗으니 먼지 때문에 눈이 따갑더군요. 아침 해가 지친 호그와트를 비추었지만 사람들은 한껏 부풀어 있었어요. 끝을 보고 난 나는 망연하게 사람들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죠.

  이제부턴 어떻게 할까. 애초에 있지도 않던 목적이 완전히 죽어버린 기분이 들었어요. 호그스미드로 돌아갈까, 아니면 머글 세계로? 온갖 생각이 엉켜 혼란스럽던 그때, 내 이름이 들리는 거예요.


  -레귤러스 블랙.


  의심할 여지없는 내 이름이, 내 등 뒤에서, 확신을 갖고, 그 때처럼.

  돌아봤을 때 숨이 멎을 것 같았어요. 부끄럽지만 정말 당신인 줄 알았어요. 깨진 안경과 헝클어진 머리, 먼지투성이의 얼굴로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되겠어요. 하지만 아니었어요. 그럴 리 없었죠. 나를 알아 본 건 해리 포터였어요.

  그와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그 자리를 도망치듯 떴어요. 사실 그렇잖아요. 그에게 어둠의 마왕을 물리쳐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야 할까요. 나를 불러줘서? 그와 대화를 나눌 자신이 없었어요. 그럴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호그와트에선 몇날며칠 축제가 열렸어요. 성을 복구하는 동시에 열린 축제는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마법사들이 다녀갈 정도로 성대했고, 그만큼 많은 날이 걸렸다고 해요. 난 가지 않고 들은 정도만 그 정도니 어지간했을까요그 날 이후로 나는 이 곳, 고드릭 골짜기의 작은 집에서 지냈어요. 조용한 동네라 마음에 들어요. 이틀 정도 자리를 잡고 짐을 풀고 나서 가장 먼저 간 곳은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는 곳이었어요. 블랙 가문의 공동묘지.

  내 이름이 적힌 묘비도 있었어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색다른 경험이긴 하더군요. 난 여기 서있는데 차가운 돌덩어리 하나가 나를 보고 죽었다고 일깨워주는 경험그렇게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느라, 미처 다른 사람이 온 것을 눈치 채지 못했어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너무 크게 내 바로 옆에 멈춰서 깜짝 놀라 돌아봤는데, 그 자리엔 형이 있었어요한 팔에 어울리지도 않는 국화꽃 한 다발을 안은 채.

  그 다음은... . 형은 처음엔 내가 유령인 줄 알았대요. 손을 뻗으면 그냥 통과할 줄 알았다나 뭐라나. 대단한 건 없어요. 내가 살아있는 걸 형이 알게 됐죠. 형이 알면 그 주변 사람들은 다 알게 된 거죠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당신의 아들에게서 내가 한 일을 전해들은 모양이었어요. 아니면 내 무덤까지 꽃을 들고 찾아올 리가 없죠. 그렇지 않아요? 당신도 상상해 봐요. 나한테 헌화하는 형이라니.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반 강제적으로 형을 통해 다른 사람들도 만났어요. 리무스 루핀은 여전히 피곤해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어느 때보다 살만해보이더군요. 위즐리 가족은 처음 봤는데 정말 대 가족이던데요. 솔직히 좀 시끄러웠어요루시우스 말포이가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약간의 도움을 얻어 씨시 누나도 만났어요. 누나는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천천히, 오래 들여다보았죠. 어색하게 웃는 것밖에 못했어요. 아마 괜찮을 거라는 말도요.

  세간엔 내 존재를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내가 죽은 줄도 모르는, 아니. 존재하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구태여 내가 살아있음을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했거든요형은 당시 내 의견에 생각하는 것보다도 내 존재 자체를 어색해해서 설득할 필요도 없었고, 당신의 아들은 다행히 동조해주었죠. 타인의 관심이 부담스러운 것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있더군요.

  덕분에 마법부가 재정립되고 해리 포터의 영웅담이 오르내리는 걸 지켜보면서 이 조용한 마을에서 지낼 수 있게 됐어요. 형 얘기를 자꾸 해서 미안한데, 연락도 자주 하고 얼굴 보겠다고 찾아오더군요웃기지 않아요?

  거짓말 아니고, 악의도 아니에요. 그냥 그 상황이 웃겼어요. 한번은 용감히도 형이 혼자 온 거예요. 적당히 마실만한 차를 내주고 앉았는데, 서로 한참 아무 말도 없는 상황이 온 거죠. 결국 피식피식 웃음이 샜고, 마주 보고 웃음을 터트렸어요.

  형과는 항상 다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보니 그렇게 싫어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아요. 형도 비슷하게 느끼는 모양이죠. , 그렇게. 우리는 나쁘지 않은 형제 관계를 만들었어요. 서른이 넘는 나이를 먹고 나서야, 비로소.


  내 이야기는 이제 끝이에요. 그렇게 재미있는 얘기는 아니죠. 흥미진진한 모험이나 무용담과는 거리가 머니까요. 그런 이야기는 살아있는 사람에게나 어울리죠. 

  하루에 수백 번도 더 내가 왜 살아있는지에 대해 묻던 날들이 있었어요. 의미 없는 물음에 스스로 지쳐 죽지 못해 살아가는 거라고, 그렇게 달랬어요당신을 사랑한 날만큼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 적이 없었어요. 그 과거에 뛰던 심장을 아프게 짊어지고 왔지만, 이제는 보내줘야죠. 가엾은 당신, 그리고 그만큼이나 불쌍한 나를 위해서과거에 목이 메어 허상을 쫓아 여기까지 흘러온 나는 망령이에요. 죽지 못해 살아온 망령. 그리고 나는 망령이 되는 게 지쳤어요. 현재와 미래는 그에 어울리는 사람들 손에 맡겨야죠.


  제임스.

  이제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어요. 그 옛날의 당신을 기억할 수 있어요. 당신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평생 동안 스스로를 숨기고 살았을 거예요. 당신이 나를 찾아줬어요비록 나를 꺼내준 당신은 차가운 세상에 나를 두고 가버렸지만… 괜찮아요. 당신도 나를 사랑해준 거, 지금은 알 수 있으니까요. 그것 말고 더 필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

  당신과 사랑한 삼년과 당신을 떠나보내고 홀로 품은 열여덟 해 동안. 당신을 원망하기도 했고, 미워하기도 했고, 아무 것도 아니라 지워내려고도 했지만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어요. 지금조차도 당신이 내게 지어주는 미소가 이렇게 선명한데.

  형이 화낼지도 모르겠어요. 어른이 되어 유해졌다곤 해도 형은 결국 형이니까요. 형 하고도 잘 지내고 싶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일 년만 더 이곳에서 지내고 싶었는데, 그 일 년 동안 당신을 향한 이 아픈 감정이 행여나 잘못될까봐 못하겠더군요.

  내 구구절절한 사연을 듣고 있는 당신이 정말 당신일지도 확신이 안가요. 당신이 죽었을 법한 나이보다 훨씬 어린 걸요.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사랑을 시작한 그 나이의 당신이라, 그냥 내 환상인가 싶어요. 하지만 이젠 상관없겠네요.

  어디선가 만나게 되면 인사라도 해줘요. 그땐 나도 웃으면서 인사를 받아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거든요. 지금 기분이라면, 충분히.

  머글들은 착한 일을 하면 행복한 천국으로 가고 나쁜 일을 하면 지옥으로 간다고 믿어요. 나는 천국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갈 수 있겠죠? 제임스. 그곳으로 가면 당신을 만날 수 있을까요?

  제임스. 제임스. 제임스 포터. 제임스.

  마지막으로, 미치도록 하고 싶은, 세상에 당신이 없어서 못했던, 그런 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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