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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11.28 [마츠이와] 아홉 번째 첫눈

 


아홉 번째 첫눈

마츠카와 잇세이x이와이즈미 하지메 151128 #이와른_전력

 

 

  "이와이즈미."


  저를 깨우는 목소리에 이와이즈미가 몽롱하게 눈을 떴다. 아침인가 싶었는데 주변이 아직 어두운 걸 보니 아닌 것 같았고, 겨울이라 해가 늦게 떠서 그런가 싶기엔 또 마츠카와가 비교적 조용히 그를 깨운 게 이상했다. . 낮게 가라앉은 이와이즈미의 목소리는 거의 쉬다시피 까끌거려서, 마츠카와는 내심 만족스럽게 웃으며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눈 온다, 지금."

  "?"


  뻑뻑한 눈을 비비며 이와이즈미가 일어나자 마츠카와가 순순히 옆으로 비켜주었다. 이불 없이 맨몸에 닿는 공기가 차가운 계절이었다. 침실 바로 옆으로 나있는 베란다로 고개를 돌리니 과연, 마츠카와 말한 대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새벽녘의 어슴푸레한 하늘에 점점이 떨어지는 눈송이가 첫눈 치고는 그 존재감이 확실했다. 바람도 타지 않고 흔들림 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는 하얀 눈이 소리 없이 참으로 조용했다. 반쯤 잠이 덜 깬 채로 침대에 앉아 밖을 바라보는 이와이즈미를 보는 마츠카와의 웃음도 조용했다.


  "나가서 볼까? 모처럼인데."

  "그럴까."

  "그렇게 막 일어나면 아프지 않아?"

  "시끄러 새끼야."


  덮고 있던 이불을 아예 어깨에 두르고 이와이즈미가 일어나자 마츠카와가 먼저 베란다 문을 열었다. 찬공기가 훅 하고 끼쳐오자 마츠카와의 맨 어깨가 좀 움츠러들었고, 이와이즈미는 이불을 질질 끌며 베란다로 나갔다.


  ", 그럼."

  "?"

  "이게 첫눈이냐?"

  "그래서 깨운 건데."


  첫눈이 아니라면 깨울 일도 없었겠지. 이미 이와이즈미보다 먼저 눈을 본 마츠카와가 조금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와이즈미를 보았다. 몇 년째 보는데도 이와이즈미는 생활적인 감각에서 둔한 느낌이었다. 배구나 자기 관리에선 필요 이상으로 꼼꼼한데. 나쁜 뜻은 아니지만, 마츠카와는 이와이즈미와의 연애가 이렇게 길게 지속되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이와이즈미는 표현이 투박하고, 직설적이라 로맨틱과는 꽤나 거리가 있었다. 물론 직구라는 점이 좋기도 했지만, 역시 연애란 어느 정도 섬세함이 필요한 법이다. 괜히 일반적인 커플들이 하루하루 세가면서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선물을 챙기는 게 아니었다.

  문득 담배가 땡겼지만 마츠카와는 충동을 억눌렀다. 프로 선수로 아직까지 배구를 하고 있는 이와이즈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마츠카와가 피우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했다. 부러 다른 쪽으로 상념을 돌리기 위해 마츠카와가 화제를 돌렸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봤는데, 첫눈이 오는 날에 고백하면 이뤄진다더라."


  그렇다더라. 대학도 졸업하고 사회생활까지 하고 있는 건장한 남자 두 명이 입에 담을만한 화제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지만 막상 내리는 눈을 보니 가장 먼저 튀어나온 말이었다. 키도 크고, 소녀 같은 인상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마츠카와가 이런 말을 한다는 걸 들으면 오이카와나 하나마키가 배를 잡고 웃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와이즈미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 괜히 기분만 머쓱해진 참이었다. 역시 스물일곱이 다 되어가는 남자가 할 얘긴 아니었지, 라고 말을 정정하려는 순간.


  "?!"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옆구리에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츠카와는 이와이즈미와 달리 맨 상체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던 터라 최소한의 방어도 할 수 없었다.


  "……."

  "너 설마 잊어버렸냐?"


  왜 갑자기 때리냐며 항의할 틈도 없이 이와이즈미의 눈과 딱 마주쳤고 마츠카와는 뒤따라 나오던 말을 그대로 삼켰다. 화내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놀란 얼굴이었다. 아니면 상처받았을지도. 섣불리 무얼 잊어버렸냐고 묻기 전에 마츠카와가 잠시 머리를 굴렸다. 이렇게 되면 투박하다느니 섬세하지 못하다느니 생각하던 자신이 민망했다. ……. 언어가 되지 못한 복잡함이 애매한 흐림으로 흘렀고 마츠카와는 괜히, 눈이 조금 쌓인 베란다의 턱을 괜히 쓸어냈다.


  "……하긴. 벌써 9년 정도 됐나."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이런 건가. 이와이즈미의 체념한 말을 촉매삼아 마츠카와의 머리가 더 빠르게 회전했다. 9년 정도라면 마츠카와가 이와이즈미와 함께 보낸 해들이었다. 물론 거기에 한 해를 더하면 같은 고등학교에서 만난 뒤부터 시작하겠지만, 9년이라면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즉 연애를 시작한 시절이었다. 물론 사귀는 동안 내내 서로만 바라보며 올곧은 날들을 보낸 건 아니었지만 결과론적으로 지금까지 함께였다. 시작부터, 시작은 고2의 겨울. 아마, 그 때도.


  "이와이즈미."


  마츠카와가 이불 위로 이와이즈미의 어깨에 팔을 둘러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이와이즈미가 못 이기는 척 마츠카와에게 몸을 맡기고, 자신이 덮고 있던 이불을 열어 주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관대한 대꾸에 마츠카와는 내심 긴장했던 마음을 쓸어내렸다. 처음 고백하던 날을 잊어버리는 일이면 이 이상으로 비난 받아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첫눈이 오는 날에 고백하면 이뤄진다더라.'


  봄고를 위한 연습을 끝내고 하교하던 고2의 하굣길이었다. 소설(小雪)이란 절기가 지나 귀신같이 하루 만에 날씨가 추워졌고,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여분으로 빌려준 목도리에 얼굴을 반쯤 묻고 겨울 밤바람에 맞서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엽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었다.

  물론 충동은 아니었다. 마츠카와와 이와이즈미는 꽤 오랫동안 서로를 탐색했었다. 팀 메이트인듯, 아닌 듯. 내가 저 녀석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저 녀석이 나를 좋아하는지를 따져보았다. 이런 줄다리기에 두 사람 모두가 꽤 능숙했다. 다른 점이라면, 마츠카와는 의식적으로 능숙했으며 이와이즈미는 무의식중에, 그리고 타고난 멘탈 덕에 능숙할 수 있었다는 것 정도.

  아무튼, 정리하자면 방금 마츠카와가 한 말은 그가 처음 이와이즈미에게 고백할 때 썼던 말이라는 것이었다.


  “화났어?”

  “.”


  그렇겠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잊어버렸다기보다 잠깐 잊어버렸다고 하려니 말이 영 이상했다.


  “나 지금 기억났어. 잊어버린 거 아냐.”

  “그러시겠지.”

  “미안해.”

  “뭐가?”

  “그 말하기 한 3분 전에 내 애인이 섬세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또 맞고 싶냐?”


  하하. 괜히 웃으며 이불 안으로 이와이즈미를 안은 마츠카와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첫눈이라. 같이 맞은 첫눈만 벌써 아홉 번이었다. 말이 좋아 아홉 번이지 내년이면 열손가락을 다 채울 거고, 그러면 십 년이다. 첫눈을 열 번째 눈이라고 부를 수 없는 만큼, 관계를 처음처럼 유지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불 아래에 맞닿은 살은 따뜻했다. 오래된 연인이라도 권태기와 같은 힘든 일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면, 방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불같이 화내지 않는 애인 같은 것. 산전수전을 겪고서도 얻어낸 깊은 신뢰에서 빚어진 쾌거 아닌 쾌거였다.


  “오늘 일은 안 잊어버릴게.”


  품안의 이와이즈미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는 걸 느끼며 마츠카와도 따라 웃었다. 어쨌든 일 년 중 처음만나는 눈이었다. 왜 첫눈이 이렇게 특별한진 알 수 없었지만 가능하다면 좋은 추억만 남기고 싶었다. 예쁘기 때문일까.


  “그 땐 한 대론 안 끝난다.”

  “여부가 있겠어.”


  까분다, . 킬킬대는 이와이즈미의 따뜻한 숨이 목덜미에 닿아서 마츠카와의 입술이 그 근원지를 곧장 찾아들었다. 가볍게 오간 입맞춤도 눈 뜬 뒤의 처음이니 첫눈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 사귈래?’


  진부한 멘트에 상투적인 물음에도 이와이즈미의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는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마주한, 풋연애는 첫 번째 첫눈과 시작했고 아홉 번째 첫눈을 맞기에 이르렀다. 흔들리던 눈동자는 이제 농밀한 입맞춤에 안정을 찾았고, 자잘한 실수에도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함께 자랐다. 맨 발가락 끝과 끝이 맞닿은 채로 함께할 수 있는 아홉 번째의 첫눈에 감사하자. 아홉 번이나 사랑하는 이와 처음을 맞을 수 있다는 건 틀림없는 행운이니까.


  “앞으로도 계속 사귀자.”

  “그게 뭐냐, 진짜.”


  흰 날 두 사람의 웃음이 첫 겨울처럼 붉었다. 




-PS

  “근데 너 또 새벽에 담배 피우다가 눈 오는 거 봤지?”

  “…….”

  “죽는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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